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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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원짜리의 희망’ 꽝 돼도… 월요일이면 인생역전 다시 꿈꾼다 [S스토리]

민생들, 기댈 건 로또 뿐… ‘의식’처럼 구매 / 작년 판매액 3조9686억7100만원 달해 / 판매량·판매액 역대 최고 기록 갈아치워 / 국민 1인당 1년에 7만7000원 투자한 셈 / 814만5000분의 1 확률에도 포기 못해 / 전국 소문난 ‘명당’ 수많은 사람들 북적 / 당첨금도 복불복… 최고 407억 최저 4억 / 수익금 대부분 저소득층 지원 등 쓰여 / 복권 기금 35% 10개 기관에 법정 배분 / “필요한 곳에 쓰이지 않는다” 지적 많아

#1.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한 아파트 단지 매장 앞. 이곳은 매주 토요일 오후만 되면 진풍경이 벌어진다. 수십명에서 많게는 1백명에 달하는 사람이 구불구불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긴 줄에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사람들 표정에는 묘한 흥분감이 묻어난다. 긴 줄은 로또 복권을 사려는 행렬이다. 이곳은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인생 역전’을 꿈꾸며 모인 사람들로 북적인다. 전국의 수많은 복권판매점 중 1등 배출이 가장 많은 곳, 이른바 ‘명당’이다. 사람이 몰리다보니 나름의 규칙이 생겼다. 우선, 보행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라인’ 유지에 각별히 신경 쓴다. 자동 구매를 선택하는 사람은 줄을 서지 않고서도 구입이 가능하다. 다른 판매점과 달리 친절하게도 자동 번호를 미리 뽑아놓는다.

 

#2. 경기도 용인에서 사는 30대 직장인 박모씨는 매주 수요일 퇴근길마다 ‘의식’을 치른다. 로또 판매점에 들러 1만원어치 로또복권을 구매하는 것. 집과 조금 떨어져 있지만, 주변에서는 소문난 명당을 찾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박씨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서 추천해주는 번호로 한 게임(5000원)을 하고, 5000원은 그때그때 생각나는 번호를 적는다”라며 “스포츠 선수들이 하는 일종의 ‘루틴’이지만, 아직 5만원 이상 당첨돼 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불황의 역설’. 대표적 불황형 상품으로 꼽히는 로또는 ‘나 홀로 호황’이다. 여기저기 경기가 어렵다지만, 올해 로또 판매액은 사상 처음으로 4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에 소문난 로또 명당에는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사람이 북적인다.

흔히 알고 있는 온라인복권 로또6/45부터 결합복권인 연금복권, 인쇄복권, 전자복권 등 판매되는 종류도 다양하다. 이들 복권 중 최고 판매는 역시 로또6/45. 45개 숫자 중 6개를 맞히는 ‘814만5000분의 1’ 게임이지만, 많게는 일주일에만 800억원가량 판매된다. 하지만 주머니 속에 넣어둔 1000원짜리 ‘희망’은 매주 토요일 오후 9시면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매주 7명 안팎의 1등이 나오지만, 그들을 봤다거나 아는 사람은 없다. 서민 주머니에서 사라진 5000원, 1만원짜리 ‘꽝’은 어디로 가는 걸까.

19일 기획재정부와 복권 수탁사업자인 동행복권에 따르면 지난해 복권 판매액은 3조9686억7100만원에 달한다. 이 중 당첨금으로 지급한 돈은 1조9843억3600만원이다. 각종 로또에 당첨돼 받는 돈을 모두 합쳐봐야 전체 판매액의 절반 수준이라는 의미다. 당첨금 외에 판매수수료, 위탁수수료 등 각종 비용을 제외하고 나면 수익금이 된다. 지난해 로또 판매액으로 올린 수익은 1조6968억8300만원에 달한다.

 

◆로또 호황… 올해 4조원 판매 전망

지난해 로또 판매는 말 그대로 ‘대박’을 기록했다. 판매액과 판매량 모두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종전 최고 판매액은 한 게임에 2000원이던 2003년(약3조8242억원)이었다. 지난해에는 이보다 1440억원가량 더 팔렸다. 판매량도 2017년(37억9700여 게임) 기록을 갈아치웠다.

우리나라 모든 국민이 평균 1년간 약 77게임을 샀다는 계산이 나온다. 1인당 1년에 로또에 쓴 돈이 7만7000원이라는 의미다. 하루 평균 로또 판매액은 109억원 수준이다.

번개 맞을 확률보다 낮은 로또 1등에 당첨에 된 사람은 지난해 총 484명이다. 1인당 평균 당첨금액은 19억6100만원이다. 이 중 세금 33%를 제하면, 실제 평균 당첨금 수령액은 13억원가량이다.

1등 당첨금은 당첨만큼이나 ‘복불복’이다. 1등 당첨자 수에 따라 당첨금이 천지차이를 보인다. 지난해 최고 당첨금은 9월1일 추첨한 822회로, 59억3000만원이 터졌다. 당첨자 수가 3명뿐이어서 ‘대박’이 가능했다. 반면, 4월14일 902회차에서는 1등이 16명이나 됐다. 당첨금 10억8300만원에, 실제 수령액은 7억원대에 머물렀다. 역대 판매실적으로 넓히면 편차가 더욱 커진다. 1회부터 854회(4월13일)까지 모든 추첨을 통틀어 가장 높은 당첨금은 10회차 407억2200만원이었다. 한 게임에 2000원이던 당시 당첨금이 다음 회로 넘어가면서 ‘초대박’을 터뜨렸다. 최저 당첨금은 4억500만원(546회차)이다. 당시 1등 당첨자만 30명에 달했다. 최고액과 최저액 차이가 100배에 달한 셈이다.

로또가 호황의 길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역설적으로 1등 407억원짜리 초대박 당첨자가 나온 이후 로또 판매는 내리막을 걸었다. ‘로또 광풍’이 불며 사행성 논란이 빚어졌고 정부는 로또 당첨금 이월 횟수를 줄였다. 2004년 8월에는 한 게임당 가격을 2000원에서 1000원으로 내렸다. 당첨금 규모가 작아지면서 로또 판매액은 꾸준히 감소해 2007년에는 2조2677억원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인생역전을 가져다 준다는 로또가 아니던가. 결국 2007년 바닥을 찍고 2008년부터 반등에 성공했다. 로또 판매액이 늘어난 이유로는 경기 불황에 따른 반작용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기댈 곳은 로또뿐이다”라는 심리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정부 측은 로또 판매점이 늘어난 데 따른 결과일 뿐이라며 이런 분석을 일축한다. 전년 대비 판매량 증가율이 2016년 9.5%를 찍은 이후 2017년 6.5%, 지난해 4.4%로 둔화하는 점을 근거로 제시한다. 동행복권 관계자는 “복권이 불황에 잘 팔리는 상품이라고 명확하게 단정할 순 없다”라며 “최근 3년새 복권 판매점이 2000곳 늘면서 판매액이 늘었지만, 전년대비 증가세는 둔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꽝’으로 쌓인 수익금 어디에 쓰나

복권 판매액이 역대 최고액을 갈아치우면서 수익금 사용에 대한 관심도 높다. 국가가 사행산업인 복권사업을 허용한 것은 수익금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전제 때문이다. 대부분의 수익금이 저소득층의 생활 안정과 주거 지원 등 사회복지에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수익금 용도에 대해서는 논란이 적지 않다.

정부는 전체 복권판매액 중 58%(당첨금 50%+사업지 8%)를 제외한 나머지를 복권기금으로 조성한다. 1000원짜리 로또복권 한 게임을 하면 420원이 기금으로 쌓이는 것이다. 올해 복권기금은 사상 처음으로 2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금은 법으로 정한 용도에 따라 사용된다. 기금의 35%가 지방자치단체, 제주도개발사업 특별회계, 과학기술진흥기금, 문화재보호기금,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 10개 기관에 법정 배분된다. 나머지 65%는 복권위원회가 선정한 공익지원 사업(서민주거안정, 취약계층 지원, 보훈복지, 문화예술 등)에 쓰인다.

지난해 기금 사용내역을 살펴보면 양성평등기금으로 2264억8200만원을 썼다. 이어 청소년육성기금 976억500만원, 입양아동 가족지원 188억원, 아동복지시설 기능보강 65억2400만원 등에 쓰였다. 가장 큰 사용처는 주택도시기금에 들어가는 돈이다. 지난해 5503억6100만원이 서민주거안정을 위해 쓰였다. 도심 내 다가구·다세대 주택을 매입해 저소득층에게 저렴하게 공급하는 사업 등이 포함됐다.

복권기금이 ‘눈 먼 돈’으로 쓰인다는 지적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10개 기관에 법정 배분되는 돈에 대한 논란이 크다. 지자체를 비롯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민체육진흥공단 등에 기계적으로 돈이 나뉘어가는데, 기금이 꼭 필요한 곳에 쓰이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복권기금을 일률적으로 나눠주는 법정배분제도는 개정할 필요가 있다”라며 “특히 사업 타당성이 떨어지는 사업에 무분별하게 돈이 투입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안용성 기자 ysah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