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사설] ‘최악의 경제 침체’ 보고도 정부는 손 놓고 있는가

기업 덮친 20년 만의 최악 재고 / 反시장·선심 정책 몰두하는 정부 / 실질 대응으로 위기 심화 막아야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재고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제조업 재고율은 지난해 11월 이후 110%선을 돌파해 20년 만에 사실상 최고 수준으로 치달았다. 지난해 12월 114.6%를 기록한 후 꺾이는가 싶더니 2월 다시 114.5%로 높아졌다. 상품 100개를 만들면 열네다섯 개는 팔지 못해 창고에 쌓아둔다는 뜻이다. 제조업 재고율은 문재인정부 출범 직전까지만 해도 100%선을 밑돌았다.

내수가 부진한 데다 수출까지 급감한 탓이다. 소비를 의미하는 소매판매액 증가율은 2월에 전년 동기 대비 2% 줄었다. 수출은 3월까지 넉달째 마이너스 행진을 했다. 재고 증가는 불황의 늪이 깊어지고 있음을 알리는 지표다.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에 재고까지 산더미처럼 쌓임에 따라 기업의 부담은 급격히 늘고, 자금 압박은 심화할 수밖에 없다. 기업마다 사활을 건 재고 정리에 나섰다. 소비재 생산 기업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할인행사를 벌이고, 경제위기 때나 보던 ‘땡처리’까지 등장했다. 웬만한 중견기업이면 예외 없이 안고 있는 수천억원대의 재고를 떨어내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가 늘어날 리 없다. 2월 기업 설비투자는 26.9%나 급감했다. 제조업 공장 평균 가동률도 크게 떨어져 지난해 73%대에서 71.2%로 추락했다. 이러니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3월 청년층 체감실업률이 사상 최고치인 25.1%로 치솟고, 30·40대 취업자가 전년 동월 대비 25만명이나 줄어든 것은 무너진 고용시장의 실상을 말해 준다. 한국은행은 그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개월 만에 또 낮춰 2.5%로 수정했다. 실물경제는 생산·소비·투자·고용 등 모든 면에서 끝 모를 침체의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정상적인 정부라면 전면 대응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총선을 겨냥한 선심성 자금 살포만 난무할 뿐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6일 6개월간 월 50만원씩 주는 청년구직활동지원금 지급 대상자 1만1718명을 선정했다. 생활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을 위해 2022년까지 48조원을 쏟아붓는다고도 한다. 청년층과 30·40대 일자리를 어찌 만들지, 기업의 생산·투자를 어찌 늘릴지 구체적인 대책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다. ‘반시장’ 정책의 골은 더 깊어지고 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해고자의 노조 가입, 5급 이상 공무원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 권고안을 내놓았다. 고비용 구조 수술을 위해 노동개혁을 해도 모자랄 판에 전교조 합법화 등으로 노조에 날개를 달아주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경제가 살아나기를 바라는가. ‘R(침체)의 공포’는 전 세계로 번지고 있다. 총력 대응에 나서도 위기를 넘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부가 ‘딴짓’만 한다면 위기는 현실화한다. 책임 있는 정부라면 당장 경제를 살릴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