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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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미술여행] 다름이 수용되는 건강한 사회

살바도르 달리의 ‘해변에 나타난 얼굴의 환영’

예술이 현실을 넘어설 수 있을까. 1차 세계대전 후 등장한 초현실주의에 답이 있다. 전쟁 후 거리에는 폭격으로 부서진 건물이 즐비했다. 전쟁 후유증과 전사자로 인한 가족 파괴나 상실감도 극에 달했다. 초현실주의는 이런 절망적인 현실을 넘어서는 ‘초현실’ 세계를 제시하려고 했다. 초현실주의자는 일상적 논리나 합리적인 사고를 벗어난 곳에서 찾으려 했다. 우연한 사건이나 행동, 꿈의 세계 같이 낯설고 신비스러운 느낌을 주는 것에 주목했다.

살바도르 달리의 ‘해변에 나타난 얼굴의 환영’에는 두 가지 측면이 담겨 있다. 달리는 전쟁 후 피폐해진 현실을 모든 물체가 병균에 의해 부패되고 일그러진 것처럼 표현했다. 산 아래에 일그러진 여러 형상을 그려 넣어 현실 파괴적인 이미지를 나타냈다. 탁자 형태의 해변 위에 놓인 끊어진 끈과 천은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짐작하기도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유럽 사회를 전쟁으로 이끌어간 어처구니없는 이기심과 그로 인해 파괴된 현실을 비판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달리는 상상력을 발동시켜 흥미를 자아내는 이중적 이미지도 만들었다. 해변에 있는 거대한 과일 접시가 우리를 당황하게 만든다. 과일 접시의 크기와 형태도 기괴하지만, 그것이 사람 얼굴의 환영처럼 보이게 한 이중적 이미지라서 더욱 의아하게 한다. 오른쪽 산의 모습도 마찬가지이다. 산의 능선을 따라가 보면, 개의 귀와 눈과 코의 형태가 나타난다. 구름 위에 떠있는 산의 구름다리는 개의 목줄이 된다. 이처럼 달리는 현실의 이미지 위에 환상적 이미지를 중첩시켜 이중적 의미로 읽히는 그림을 제작했다. 현실과 환상을 뒤섞는 방법으로 절망적인 현실을 극복하려 한 것이다.

요즘 같으면 신문 보기가 두렵다. 나만 있고 우리는 없는 사회 같아서다. 나와 다른 것은 틀린 것이고, 나만 좋으면 된다는 식이 넘쳐난다. 하나의 이미지가 두 가지 의미로 읽힐 수 있다는 유연한 사고와 다름이 수용되는 다양성의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