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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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명배우들 활동… 한국 현대연극의 산실

1969년 ‘고도를 기다리며’ 초연 계기 / 임영웅 대표 극단 창단… 소극장 신축 / 김무생·사미자 등 대배우들 함께해 / 女관객 끌며 ‘여성 연극 산실’ 명칭 / 5월 7일부터 임 대표 삶·작품 조명 / 관련 공연·전시·토크 콘서트 줄이어
어느 길가 작은 나무 옆에서 ‘고도’라는 사람을 기다리는 두 남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이야기 ‘고도를 기다리며’가 국내 초연 50주년을 맞았다. 이를 계기로 결성된 후 쉬지 않고 관객에게 “고도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온 연출가 임영웅의 극단 산울림도 반백년의 역사를 지니게 돼 다양한 공연과 행사로 그동안 빛났던 무대를 기념한다.

 

1985년 설립 당시 산울림소극장 모습(왼쪽)과 현재 모습. 산울림소극장 제공

◆임영웅과 산울림, 고도를 기다리며

소설가 조흔파가 지도하던 휘문중 연극부에서 연극 인생을 시작한 임영웅(사진) 산울림소극장·극단 대표는 서라벌예대 재학 중이던 1955년 모교인 휘문고 연극부의 전국 연극경연대회 출전작인 유치진 원작 ‘사육신’을 통해 연출가로 데뷔했다.

이후 1966년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를 연출하고 1968년 ‘환절기’로 국립극단 작품 첫 연출을 맡는 등 60여년에 걸친 연극 인생을 통해 ‘사실주의 연극의 대가’란 명성을 쌓았다.

척박한 풍토의 우리나라 연극계에서 꾸준히 문제작을 소개해 온 서울 마포 산울림소극장은 임 대표가 불문학자인 아내 오증자 서울여대 명예교수와 함께 살던 서교동 집을 1985년 사재를 털어 지하 2층, 지상 3층 규모 극장 건물로 신축한 문화공간.

연출가 임영웅과 뗄 수 없는 건 사뮈엘 베케트의 대표적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다. 1969년 12월 당시 한국일보 소극장에서 임 대표가 이 작품을 초연한 것을 계기로 극단 산울림이 창설됐다. 작가 사뮈엘 베케트가 초연 개막 직전 노벨상을 받으면서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 임 대표는 ‘부조리’ ‘실존주의’같은 철학적 의미를 어렵게 강조하는 대신 인간의 조건과 삶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 관객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산울림극단의 이 공연을 기점으로 우리나라 연극은 “신극 시대가 끝나고 본격적인 현대연극의 막이 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임 대표는 평소 인터뷰에서 “현대사회의 인간을 이 작품만큼 철저하고 깊이 있게 그리고 다양하게 그린 작품은 찾아볼 수 없다. 공연을 할 때마다 늘 신선하고 숨겨져 있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점이 이 작품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임 대표는 이후에도 끊임없이 고도를 기다리며를 새롭게 연출하며 ‘인생’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전개되는 보통 사람의 기쁨과 슬픔, 의혹과 진실의 실마리를 펼쳐놓았다. 1988년 서울국제연극제에 왔던 부조리극의 세계적 권위자 마틴 에슬린은 이 공연을 보고 “베케트의 철학은 비극적이긴 하지만 유쾌한 허무주의로 진전시킨 임영웅의 ‘고도’는 훌륭한 무대였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울림은 숱한 명배우의 보금자리이기도 했다. 창단 멤버는 황운헌 대표와 임 연출, 김성옥, 함현진, 김인태, 김무생, 사미자, 윤소정, 손숙, 윤여정 등. 이후 산울림에선 박정자, 윤석화, 김용림, 이용녀, 김무생, 오지명, 전무송, 주호성 등 빛나는 별 같은 원로 배우들이 활동했다.

산울림은 중·장년층 여성을 연극 무대 앞으로 불러모으는 데에도 큰 기여를 했다. ‘위기의 여자’ ‘숲속의 방’ ‘그대 아직 꿈꾸고 있는가’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 ‘담배 피우는 여자’ ‘그 여자’ 등으로 ‘여성연극의 산실’이란 명칭을 얻었다.

◆임영웅 기록전과 산울림 토크콘서트

산울림 창단 50주년 기념행사의 시작은 ‘소극장 산울림과 함께한 연출가 임영웅 50년의 기록’ 전시회다.

다음달 7일부터 25일까지 마포아트센터 스튜디오Ⅲ에서 임 대표의 삶과 작품세계를 다각적으로 조명한다. 연출 인생 50년 연보를 시작으로 포스터, 리플렛, 의상, 공연사진, 신문기사, 수상 트로피 등 한국 연극사에서도 귀중한 의미를 가지는 실물자료 30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고도를 기다리며 초기 대본과 초연 리플렛, 연출노트 등이 영인본으로 전시된다. 또 고도를 기다리며의 현존 영상본 중 가장 초기본인 1988년 실황을 디지털데이터로 복원해 2018년 버전과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다.

명동예술극장에선 다음달 9일부터 6월2일까지 국립극단 초청 공연으로 명배우 정동환, 이호성, 박용수, 안석환, 김명국, 정나진, 박윤석, 이민준 등이 나오는 고도를 기다리며가 무대에 오른다.

아울러 산울림은 한국 현대 연극의 역사와 함께하는 배우 및 관계자를 초청하는 토크 콘서트를 다음달 18일, 26일과 6월1일 연다.

1회는 ‘산울림의 고도, 50년 동안의 기다림’, 2회는 ‘산울림의 무대를 빛낸 여배우들’, 3회는 ‘산울림의 현재, 새로운 만남과 시도들’이 주제다. 임 대표 딸인 임수진 산울림 극장장은 “50년 동안 산울림을 사랑해온 관객들이 이번 공연, 전시, 토크 콘서트에 관심을 갖고 함께하는 뜻깊은 자리가 되길 기대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