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사랑'과 '집착'을 착각하는 사람들…위험수위 다다른 '데이트 폭력' [김현주의 일상 톡톡]

94.2% "데이트 폭력은 엄연한 범죄"…성별, 연령에 관계 없이 한 목소리 / 86.1% "우리사회는 연애·혼인관계에서 발생하는 일을 '사랑싸움' 정도로 무마하는 경향 있어" / 86.7% "과도한 집착과 사랑을 혼동하는 사람들 많은 것 같아" / 대부분 '데이트 폭력' 처벌할 수 있는 엄격한 법규 마련 시급하다고 바라봐 / 데이트 폭력, 특수상해나 폭행·협박 등의 혐의 적용받는 경우 많아…2년 이하 징역, 집행유예 정도로 그치는 경향

일반적으로 연인관계는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마음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서로 상대에 대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어야지만 가능하며, 그렇기 때문에 연인관계는 '존중'과 '배려'가 바탕이 되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연인관계도 결국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이다 보니 사소한 오해와 잘못들이 쌓여가면서 갈등이 생겨나고, 큰 다툼으로 번지기도 합니다.

 

이럴 때 갈등과 다툼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한데요.

 

대화가 아닌 잘못된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들 경우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데, 가장 극단적인 모습이 바로 '데이트 폭력'입니다.

 

연인의 행동이 자신의 마음에 안 들거나, 마음이 떠난 연인을 붙잡는다는 명목으로 데이트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이러한 데이트 폭력이 점차 위험수위에 다다르고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사회적 문제로까지 대두된 데이트 폭력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봤습니다.

거의 대부분(94.2%)은 “데이트 폭력은 엄연한 범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86.1%는 우리사회가 연애 및 혼인관계에서 발생하는 일을 사랑싸움 정도로 무마하는 경향 있다고 답했는데요.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연애 경험이 있는 전국 만 19~59세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데이트 폭력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많은 사람들이 최근 사회전반적으로 빈번해지고 있는 데이트 폭력에 대해 상당히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먼저 전체 응답자의 94.2%가 데이트 폭력을 엄연한 범죄라고 바라봤는데, 성별(남성 92.2%, 여성 96.2%)과 연령(20대 94.8%, 30대 95.6%, 40대 94%, 50대 92.4%)에 관계 없이 모두가 공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문제는 대부분(91.2%) 알려지지 않은 데이트 폭력의 사례가 매우 많다고 생각한다는 것으로, 그만큼 데이트 폭력 사례가 주변에 적지 않으리라는 예상을 해볼 수 있습니다.

 

데이트 폭력을 그저 개인간의 사소한 다툼이라고 보는 시각은 매우 적었는데요.

 

전체 응답자의 16.8%만이 데이트 폭력은 결국 연인간의 ‘사랑싸움’이니 둘이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는 생각을 내비쳤을 뿐이었습니다. 오히려 10명 중 9명 정도(86.1%)는 우리사회가 연애 및 혼인관계에서 발생하는 일을 ‘사랑싸움’과 ‘다툼’ 정도로 무마하는 경향이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데이트 폭력도 엄연한 범죄인만큼 사회적인 차원의 관심과 각성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특히 남성보다는 여성이 데이트 폭력을 사랑싸움이나 다툼 정도로 가볍게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남성 78.2%, 여성 94%)을 많이 했습니다.

 

이렇게 데이트 폭력이 만연해진 배경과 관련해서는 상대에 대한 집착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아 보였는데요.

 

전체 응답자의 86.7%가 요즘은 과도한 집착과 사랑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고 지적한 것으로, 세대 구분 없이 비슷한 생각(20대 83.6%, 30대 82.4%, 40대 89.6%, 50대 91.2%)을 내비쳤습니다.

 

반면 연인이 자신에게 집착하는 것은 그만큼 자신을 좋아하고,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생각(35.4%)은 적은 편이었습니다. 다만 남성(남성 50.4%, 여성 20.4%)과 20대(20대 44.4%, 30대 29.6%, 40대 32.4%, 50대 35.2%)의 경우에는 집착을 하는 것도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의 표현이라는 생각을 상대적으로 많이 하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요즘 연인관계 및 부부관계에서 상대방을 쉽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는 의견도 많았는데요. 전체 63.5%가 요즘 연인이나 배우자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는 데 공감하는 것으로, 남성(53.8%)보다는 여성(73.2%), 젊은 세대(20대 68%, 30대 66.8%, 40대 62.4%, 50대 56.8%)가 좀 더 많이 공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대부분 연인과의 의견차이는 대화를 통해 충분히 좁힐 수 있고(80%), 누가 되었든 양보나 희생 없이는 연애를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67.1%)고 생각하면서도, 실제 행동은 그렇게 하지 못한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실제 연애할 때 데이트 폭력 겪은 경험 적지않아…가장 빈번한 건 '언어 폭력'

 

데이트 폭력 수위가 조금씩 다르겠지만, 실제 연애 과정에서 직접 데이트 폭력을 경험한 사례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형태는 ‘언어적 폭력’으로, 10명 중 8명이 과거에 데이트를 하면서 연인이 못마땅한 표정을 짓거나(80.3%), 짜증난 목소리로 화를 낸 적(79%)이 있었다고 응답했습니다.

 

연인이 자신에게 고함을 지르고, 큰 소리를 낸 적이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절반(48.3%)에 달했으며, 4명 중 1명은 연인이 자신을 괴롭히기 위해 악의에 찬 말을 하고(28.5%), 약점을 잡아 모욕했으며(26.8%), 욕을 했던(26.8%) 적도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연인관계에서 언어적 폭력이 생각보다 자주 발생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들로, 이러한 경험은 성별과 연령에 관계 없이 대체로 비슷한 모습이었습니다.

 

‘정신적 폭력’ 사례도 드물지 않았는데요.

 

4명 중 1명(25.8%)이 연인이 자신의 일정을 모두 알려고 하고, 간섭하러 한 적이 있었다고 응답했으며, 친구나 가족과의 만남을 통제하거나(14.4%), 정숙한 옷차림을 강제하고(14%), 집착 증세를 보였다(12.6%)는 경험도 존재했습니다.

 

‘신체적 폭력’ 가운데 연인이 화가 나서 발을 세게 구르거나 문을 세게 닫았던 경험(38.5%)이 가장 많았으며, 10명 중 2명은 연인이 자신을 밀쳤거나(20.6%), 팔을 비틀고 꼬집었던(20.2%) 경험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아예 연인으로부터 뺨을 맞았거나(8.6%), 발로 차였거나(8.2%), 계속해서 심하게 맞은(4.4%) 경험과 연인이 자신의 앞에서 자해 행동을 했던(7.7%) 경험도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나, 데이트 폭력이 상당히 위험한 수위까지 올라왔다는 우려를 가지게끔 합니다.

 

최근 연인관계에서 빚어지는 성폭력 문제도 많이 발생하고 있는데, 실제 원하지 않는데도 연인이 성 행동을 조르거나 강력히 요구했거나(15.4%), 야한 영상을 보도록 했으며(10.2%), 성적 수치심이 드는 말을 한 적이 있었던(5.7%) 경험이 결코 적지 않았습니다.

 

노출 사진과 성관계 영상을 보내고(5.3%),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 영상을 찍기를 강요하며(3.2%), 성행동을 하기 위해 때리거나, 물건으로 위협한(2%) 경험도 찾아볼 수 있었는데요.

 

이러한 경험들이 쉽게 밖으로 드러내기 힘들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연인 사이에 발생하는 신체적, 성적 폭력이 생각 이상으로 많을 것이라는 안타까운 예상이 가능할 것입니다.

 

◆10명 중 7명 "연인에게 존중받지 못한다면 관계 정리해야"

 

이렇게 데이트 폭력의 사례가 빈번하고, 위험성이 높은 만큼 데이트 폭력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전체 응답자의 87.6%가 데이트 폭력을 처벌할 수 있는 엄격한 법규 마련이 시급하다고 응답한 것으로, 모든 세대(20대 84%, 30대 86.4%, 40대 90%, 50대 90%)에서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만 데이트 폭력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한편으로 개인 차원의 적극적인 대처를 주문하는 목소리도 많이 나왔는데요. 전체 10명 중 7명(70.6%)이 연인관계나 혼인관계에서 배려나 존중을 받지 못한다면, 단칼에 관계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을 한 것입니다.

 

참고 헤어지지 못하는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도 문제가 있다면서(58.7%), 자신이 데이트 폭력을 당하게 되면 경찰에 신고할 것이라고(67.9%) 말하는 응답자도 상당히 많은 편이었습니다.

 

절반 가량(52.8%)은 데이트를 하면서 상대방이 화내는 것이 두려워 내키지 않아도 원하는 대로 따라준 적이 있다고 밝히기도 해, 실제 개인 차원에서 데이트 폭력을 적절하게 대처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데이트 폭력 중 상당수가 마음이 떠나간 연인을 붙잡으려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만큼 결국은 이별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만 한다는 생각도 많이 하는 것으로 보여졌는데요.

 

헤어지는 것은 연애하면서 있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데 대부분(89.2%)이 공감한 것으로, 그에 비해 이별은 ‘연애의 실패’라는 생각(18.5%)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데이트 폭력·살인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진짜 이유'

 

수년 전부터 '이별 살인'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연인 간 살인·폭행 사건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모습입니다.

 

데이트 살인을 포함하는 '데이트 폭력'이라는 용어는 2000년대 중반부터 대중매체를 통해 처음 등장했는데요.

 

시민단체 한국여성의전화가 2009년부터 '데이트 폭력 실태조사'를 발표하는 등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사회적 용어로 쓰이는 모습을 보였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관련 사건의 대중 노출 빈도도 늘었습니다.

 

하지만 연인 간 살인·폭행은 2000년대에 더 많이 발생했고,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오히려 사건 수가 줄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경찰 '범죄통계'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7년까지 발생한 애인 간 살인(미수 포함)은 평균 103.4건이었습니다. 10년 전 같은 기간인 2001년부터 2007년까지 발생한 애인 간 살인은 평균 121.4건이었는데요.

 

데이트 살인에 대한 사회적 논란과 우려, 관심도가 더 높아진 2010년대에 오히려 관련 사건은 줄어든 것입니다.

 

같은 기간 애인 간 폭력 사건도 10년 전인 2000년대에 소폭 더 많았던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범죄통계에 따르면 2011년에서 2017년 사이 애인 간에 일어난 폭력범죄(강간은 강력범죄로 제외)는 평균 9049건이었습니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는 평균 9245건으로 더 많았는데요. 다만 폭력의 경우 2016년에 처음으로 1만건이 넘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데이트 폭력·살인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국내 가부장적인 문화가 법적인 부분으로도 이어지는 것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런 탓에 관련 사건에서 남성들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재판부가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다는 지적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습니다. 특히 살인 등 강력범죄가 아닌 이상, 데이트 폭력은 주로 특수상해나 폭행·협박 등의 혐의를 적용받아 2년 이하의 징역이나 집행유예 정도로 그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입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