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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 논두렁 시계' 논란 그 후 10년… 이인규 행방은?

2009년 4월22일 KBS "박연차, 盧대통령에 시계 줘" 첫 보도 / 이인규 "명품시계 언론 흘려 망신 주자는 국정원 제안 거절" / 국정원 자체 조사와 검찰 수사 이뤄졌으나 아직 결론 안 나 / 2017년 8월 출국 후 '함흥차사'… 열쇠 쥔 이인규는 어디에?
2009년 4월30일 대검 중수부에 출석해 밤샘 조사를 받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튿날인 5월1일 새벽 조사를 마치고 귀가하기 전 손을 들어 취재진에 인사하고 있다. 왼쪽은 당시 변호인이던 문재인 대통령. 세계일보 자료사진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에게 스위스제 명품시계 한 쌍을 선물로 건넸다. 검찰은 뇌물 여부를 수사 중이다.’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인 2009년 4월22일 KBS 9시뉴스가 ‘단독’이라며 보도한 기사의 파장은 예상보다 훨씬 더 컸다. 얼마 뒤 SBS가 ‘노 전 대통령 측이 문제의 명품시계를 논두렁에 버린 것으로 알려졌다’는 취지의 기사를 후속 보도하면서 ‘논두렁 시계’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노 전 대통령의 도덕성은 땅바닥에 떨어졌고, 검찰은 뇌물수수 혐의 입증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이 사안은 한동안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피의사실 일부를 특정 언론에 슬쩍 흘린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당시 수사 책임자였던 이인규(사진) 전 대검 중수부장이 언론을 통해 “검찰이 아니고 국가정보원 작품”이란 주장을 내놓으며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인규 "명품시계 언론 흘려 망신 주자는 국정원 제안 거절"

 

22일 검찰에 따르면 국정원은 문재인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이명박·박근혜정부 시절 국정원의 각종 적폐 수사를 검찰에 의뢰하며 ‘논두렁 시계’ 의혹 부분은 뺐다. 2009년 국정원이 ‘논두렁 시계’ 보도에 직접 관여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실제로 KBS는 ‘노 전 대통령이 박 전 회장한테 명품시계를 받았다’는 보도는 국정원과 무관하게 소속 기자가 취재 과정에서 확인한 팩트라는 주장을 일관되게 펴왔다. ‘해당 시계가 논두렁에 버려졌다’는 취지로 보도한 SBS 역시 “자체 조사 결과 국정원과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이인규 전 중수부장은 ‘논두렁 시계’ 보도는 국정원 작품이란 입장이 확고하다. 그는 지난해 6월25일 언론에 배포한 이메일에서 “2009년 4월22일자 KBS 9시뉴스 보도는 국정원 대변인실이 개입하여 이루어진 것을 확인했다”고 했다.

 

당시 국정원 책임자는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알려진 원세훈 전 원장이다.

 

이 전 중수부장은 “원 전 원장이 2009년 임채진 당시 검찰총장에게 직접 전화해 ‘노 전 대통령의 시계 수수 사실을 언론에 흘려 망신을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다”고 당시 정황을 소상하게 공개했다.

 

◆2017년 8월 출국 후 '함흥차사'… 열쇠 쥔 이인규는 어디에?

 

2009년 4월22일 오후 KBS의 스위스제 명품시계 보도 직후 검찰은 다른 신문과 방송사들에서 문의가 빗발치자 “확인해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이튿날 홍만표 당시 대검 수사기획관이 언론 브리핑에서 “우리(검찰) 안에 나쁜 ‘빨대’(취재원을 일컫는 속어)가 있다. 그 형편없는 빨대를 반드시 색출하겠다”고 말함으로써 명품시계 관련 의혹을 수사 중임을 사실상 인정했다.

 

실제 검찰은 해당 시계를 뇌물로 간주해 그 금액을 노 전 대통령의 수뢰 혐의 액수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했다. 2009년 4월30일 노 전 대통령이 대검 중수부에 출석해 조사를 받을 당시 주임검사였던 우병우 당시 대검 중수1과장도 이 대목을 집요하게 캐물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짜 국정원 작품이 맞는지, 아니면 다른 내막이 있는지 확인하려면 검찰이 이 전 중수부장을 상대로 대면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 전 중수부장은 2017년 8월 한국을 떠난 뒤 귀국할 기미가 없다.

 

벌써 20개월 가까이 외유하는 사이 검찰 수사는 흐지부지됐다. 일각에서 “도피성 출국”이란 비난이 제기된 이유다. 다만 현재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 전 중수부장 측은 도피 의혹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그는 국내 언론에 “만약 검찰 등에서 조사 요청이 온다면 언제든 귀국해 조사받을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