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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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부모 ‘손길’ 대신하는 육아 아이템

지금으로부터 딱 1년 전, 이 지면을 통해 큰 기대와 소소한 불만을 함께 털어놓은 적이 있다. 아이의 출산을 기다리면서 느꼈던 벅찬 감정과 아기용품으로 점점 사라져가는 내 공간에 대한 투덜거림이었다. 첫돌이 갓 지난 아이를 보며 그때 느꼈던 감정을 떠올려보면 한마디 툭 튀어나온다, “예상했던 것, 그 이상이다!”라고. 아이 키우기는 생각보다 더 힘겨웠으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감동적이었다. 밤새 보채는 아이와 혈투를 벌이다 부부가 긴 한숨을 쉬며 잠이 들었다가도 다음날 아침 우리를 보며 활짝 웃는 아기를 보면 피곤함이 싹 사라진다.

1년 전 투덜거림도 그 이상이었다. 내 공간이 사라지는 속도 또한 예상을 훌쩍 뛰어넘도록 빨랐다. 욕조나 유모차, 모빌 등 물건의 ‘점령’은 예상했던 일이어서 끈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런 것도 있어?’ 신기한 육아용품들이 시야 속에 불현듯이 나타난다. 젖병이나 아기 식기, 신발 등도 용도별로 세분화되어 있다. 유모차도 용도별로 사야 한다는 것을 아이 키우면서 알았다. 상황이 이러니 집안은 아이 물건들로 쌓여갈 수밖에 없다. 흥미가 좀 생겨서 인터넷을 검색해 봤더니 완전 별천지였다. 듣도 보도 못한 육아용품의 홍수. 그 글들에는 “역시 육아는 아이템 빨이네요. 등골이 휘어도 사야죠”라는 댓글들이 심심치 않게 달려 있었다.

서필웅 문화체육부 기자

재미있는 것은 주변의 육아 선배들이 봐도 신기한 아이템들이 제법 된다는 것. 이미 학부모가 된 주변분들에게 물어봤더니 “우리 땐 그런 거 없었다”는 대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육아용품 아이템들의 상당수가 최근 생겨나 급작스럽게 유행하다 사그라들곤 하는 것이었다. 다양하고 신기한 육아 아이템들이 탄생과 소멸을 반복한다. 아이로니컬하지 않은가, 저출산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이 시대에 육아용품 아이템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 아이를 낳지 않는데 도대체 이 아이템들은 누가 사주는 걸까.

부모가 되어 보니 해답이 간명하게 드러나 보인다. 바로 우리의 불안감이 이것들을 사들이게 하는 것이다. 사실 갖가지 육아용품들은 아이에게 온전히 시간과 정성을 투자할 수 있다면 불필요한 것들이다. 따뜻한 부모의 손길만 있다면 굳이 ‘신종 아이템’이 없어도 아이들은 잘만 자라난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야 하는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그처럼 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경쟁이 치열한 우리 사회는 육아에 전념할 수 없게 만들고, 부모들은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린다. ‘내가 아니면 우리 아이를 지켜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아이에게 ‘올인’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이때 생기는 마음의 틈을 육아마케팅이 파고든다. 돈이라도 들이면 좀 나아질까 싶으니까 등골이 휘어져도 사줄 수밖에.

결국 이는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닐 듯싶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자라나는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고민하고, 더 나아가 다 같이 돌보는 문화가 자리 잡지 않는 한 부모들의 불안은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출산에 대한 고민과 함께 우리 사회의 육아문화도 천천히 바꿔나가야 하는 이유다. 이 변화의 흐름이 널리 번져나가 부디 다음 세대의 육아는 마케팅용 아이템에 휘둘리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서필웅 문화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