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이민·反유럽주의 표방 극우정당 영향력 더 커지나 [세계는 지금]

유럽연합(EU)은 1951년 서유럽 6개국이 참여한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로 태동한 이후 줄곧 통합 심화·확대의 역사를 써 왔다. 그러나 2014년 유럽 내 난민 급증과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위기, 최근의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문제 등까지 원심력이 줄곧 강화돼 온 가운데 오는 23∼26일 치러지는 유럽의회 선거는 향후 유럽이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 시금석이 될지 모른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반(反)이민·반유럽 주의를 표방하는 극우 포퓰리스트 정당들의 약진 가능성이 점쳐지는 가운데 중도파가 40년 만에 과반의석 점유에 실패할 것으로 점쳐지기 때문이다. 미 싱크탱크 유라시아그룹은 2019년 10대 리스크 중 네 번째로 ‘유럽 포퓰리즘’을 꼽으며 “유럽 회의론자(Euroskeptics)들이 유럽의회와 EU 집행위원회, EU 정상회의 등에서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갖게 되면서 (회원국들이) 이민·무역·법치 등 주요 정책이슈에 관한 공감대를 구축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럽의회 선거 어떻게 진행되나

5년마다 치러지는 유럽의회 선거는 23일 영국·네덜란드를 시작으로 26일까지 EU 28개 회원국에서 날짜를 달리 해 실시된다. 5억여 명의 유권자들이 총 751명의 의원을 선출하며, 인구 규모에 따라 회원국별 의석수가 할당돼 있다. 독일이 96석으로 가장 많고 프랑스 74석, 영국·이탈리아 73석, 스페인 54석 등이다. 룩셈부르크·에스토니아·몰타·키프로스 4개국이 6석으로 가장 적다.

유럽의회 선거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로 치러진다. 유권자들이 각국 정당에 투표하면 득표율에 따라 해당 정당이 유럽의회에 보낼 의원 숫자가 정해진다. 좌우를 가릴 것 없이 소수정당의 진출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는 얘기다. 소선구제를 기본으로 하는 영국 같은 나라는 그런 경향이 더욱 강화된다. 브렉시트 논의에 불을 댕긴 영국독립당(UKIP)은 2015년 영국 총선에서 12.6%를 득표해 득표율 3위를 기록하고도 당선자는 1명밖에 못 냈다. 지역구에서 1등을 한 후보가 나이절 패라지 대표 1명뿐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201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영국독립당이 영국 내 최다인 24명의 당선자를 배출했다. 패라지가 새로 합류한 브렉시트당은 올해 선거에서 27% 지지율을 나타내 노동당(22%)과 보수당(15%)을 제칠 것으로 최근 유고브(YouGov) 여론조사가 예측했다.

유럽의회 의석을 확보한 정당은 비슷한 정치성향을 지닌 다른 회원국 정당과 교섭단체 격인 정치그룹을 결성한다. 7개국 이상 정당 소속 의원이 25명 이상 모이면 정치그룹을 구성할 수 있다. 영국 녹색당 소속 의원들이 다른 나라 녹색당 의원들과 ‘녹색당 및 자유동맹 그룹’(Greens/EFA)을 결성하는 식이다. 무소속으로 남을 수도 있으나 교섭단체 구성 시 위원회 배치나 재정 등에서 여러모로 유리한 위치에 놓인다.

유럽의회는 과거 EU 내 다른 기구에 비해 실권이 작아 ‘이빨 없는 호랑이’라는 소리까지 들었으나 EU 행정·예산 감시권 등 권한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다. 유럽의회는 현재 회원국 정상들 모임인 EU 정상회의(유럽이사회)와 함께 입법안을 수정·거부할 수 있는 공동 결정권을 갖고 있으며, EU 행정수반 격인 집행위원장도 선출한다. 앙겔라 메르켈(독일 총리)이라는 EU 내 걸출한 지도자가 정계 은퇴를 선언해 리더십 공백이 예상됨에 따라 현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의 뒤를 누가 잇게 될지, 어떤 정치그룹의 입김이 신임 의장 선출에 결정적 작용을 하게 될지 등에 더욱 관심이 쏠린다.

◆브렉시트·난민위기 이후 첫 선거

올해 유럽의회 선거의 중심 화두는 ‘유럽 회의론’이다. 2014년 시리아 내전 격화·장기화로 많은 수의 난민이 유입되면서 유럽 각국에서는 극우 포퓰리스트들을 중심으로 “난민이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불만이 커졌다. EU의 이민·난민 정책에 대한 불만은 “EU로부터 주권을 돌려받자”는 자국 우선주의로 이어졌다. 2015년 그리스 구제금융 협상 과정에서 보인 각국의 경멸적인 태도가 유럽 통합 정신에 커다란 상처를 남긴 가운데 발생한 프랑스 파리 테러는 반난민·반이슬람 정서를 더욱 키웠다. 2016년 영국이 국민투표로 브렉시트를 결정하면서 유럽의 원심력은 극대화됐다.

영국 의회가 브렉시트 방안을 놓고 ‘식물국회’의 진수를 보여준 까닭에 올 유럽의회 선거도 혼란이 극심해졌다. 영국이 애초 예정대로 3월29일 EU를 탈퇴했다면, 혹은 1차 연기 시한(4월12일) 내에 브렉시트안을 처리했더라면 이번 선거는 영국이 빠진 채 치러지면 그만이었다. EU는 이에 대비해 영국 의석 73석 중 46석을 없애고 27석은 과소대표된 프랑스·스페인(+5석), 네덜란드·이탈리아(+3석) 등에 새로 배정하는 방안까지 마련해 뒀다.

하지만 영국 정부와 EU 간 브렉시트 합의안도, 하원 의향투표에서 제시된 대안들도 모두 부결되고 브렉시트 시한이 10월31일로 연장되면서 영국은 일단 이번 선거에 참여하게 된다. 유럽을 떠나기를 원하는 나라에서 유럽의회 의원을 뽑는 괴이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당명마저 ‘브렉시트’인 정당이 유럽의회 선거에 참여해 여론조사 선두를 달리는 것도 아이러니다.

티에리 쇼팽 릴 가톨릭대 정치학 교수는 보도전문채널 프랑스24에 “영국은 (현재) 완전한 권리를 가진 회원국이므로 EU에 대표자를 보내는 것은 합법적 의무”라면서도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우스꽝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유럽의회 선거는 각국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저항투표’의 성격을 지닌다. 영국에서는 여기에 제2차 브렉시트 국민투표 성격이 더해질 전망이다. EU 탈퇴를 주장하는 브렉시트당, 브렉시트에 반대하며 보수당과 노동당을 탈당한 의원들이 결성한 ‘체인지UK’ 등이 브렉시트에 관한 선명한 입장을 내걸고 유럽의회 선거전에 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BBC는 “많은 이들이 이번 선거가 브렉시트와 영국의 미래를 둘러싼 대리 국민투표가 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극우포퓰리즘 물결 앞 위기의 중도

유럽의회는 1979년 첫 선거 이래 중도우파 국민당 그룹(EPP)과 중도좌파 사회당 그룹(S&D)이 1, 2당을 차지해 왔다. 이 두 중도파의 의석 점유율은 2009년 61%에서 2014년 54%로 줄어들긴 했지만 줄곧 과반을 사수하며 유럽의회 내 최대 정치세력 자리를 유지했다.

그러나 이들 중도파는 올해 처음으로 과반 달성에 실패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의회가 지난달 18일 발표한 교섭단체별 예상 의석수에 따르면 EPP가 180석, S&D가 149석을 얻어 1, 2당 지위를 유지하지만 의석 점유율은 43.8%에 그쳤다. 프랑스 집권당 ‘전진하는 공화국’이 가세한 유럽자유민주동맹(ALDE)이 76석을 얻을 것으로 예측돼 이들 세 그룹이 연대해야 유럽의회 내 과반을 차지하게 된다.

반면 이탈리아의 ‘동맹’, 프랑스 국민연합(RN) 등 극우 정당이 속한 ‘국가와 자유의 유럽’(ENF)은 현재 37석에서 62석으로, 성향이 비슷한 ‘자유와 직접민주주의의 유럽’(EFDD)도 현재 41석에서 45석으로 덩치를 부풀릴 것으로 예상됐다. 영국 브렉시트당 등 새로운 정당들도 62석을 차지할 전망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유럽 극우 각 정파가 경제·대러시아 외교 등 정책적 차이를 딛고 이번 선거를 계기로 단일대오를 꾸리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지난달 25일 프라하에서 열린 체코 극우정당 ‘자유와 직접민주주의’(SPD) 유세에는 RN의 마린 르펜 대표와 네덜란드 극우 자유당(PVV)의 헤이르트 빌더르스 대표가 가세한 바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최근 공동 국경경비대·유럽 난민사무소 신설, 공동방위 강화 등 ‘EU 쇄신’으로 유럽의 새로운 르네상스(부흥기)를 맞이하자고 촉구한 것은 이 같은 극우 포퓰리즘·유럽 회의주의 확산에 대한 경계감을 반영한다.

유라시아그룹은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폴란드, 헝가리 등 4개 회원국의 포퓰리스트 정상들은 (이번 선거를 통해) 유럽회의론자들이 EU 집행위의 실질적 정책결정 파워를 갖기를 원할 것”이라며 “올해 새로 출범하는 집행위는 출범도 하기 전에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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