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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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층간소음

지난 2월 초 충북 청주시 청원구의 한 아파트에 사는 A씨는 오전 6시쯤 아래층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자 112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이 집에 들어가 보니 천장에 층간소음 ‘보복용 스피커’가 달려 있었다. 평소 윗집 소음에 시달려 온 주민이 ‘아기 울음소리’ ‘망치 두드리는 소리’ ‘세탁기 돌리는 소리’를 자동재생으로 설정해놓고 나간 것이다. 지난달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조현병 환자가 불을 지르고 주민에게 흉기를 휘둘러 20명의 사상자를 낸 사건도 층간소음이 촉발했다.

층간소음 피해자들은 ‘발망치’라는 은어를 쓴다. 위층 사람들이 걸어 다니거나 뛰면서 발뒤꿈치로 내리찍는 소리를 말한다.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의 자료를 보면 아이들의 발망치가 층간소음 민원의 70.6%를 차지한다. 이 센터에 신고된 층간소음 민원은 2016년 1만9485건, 2017년 2만2849건, 2018년 2만8231건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이웃 간에 혹여 “아이들이 뛸 수도 있지”, “부모의 양식과 교육 문제”라고 충돌하면 원수 되기 십상이다. 이런 탓에 아이를 둔 가구는 일부러 아파트 1층에 입주하기도 한다.

아파트 층간소음은 실제보다 더 크게 들린다고 한다. 쿵쾅거리는 소리에 한번 짜증이 나면 그다음부터는 작은 소리에도 신경이 쓰이고, 나중에는 온통 윗집 소음만 들리게 된다는 것이다. 심리적인 영향이 크다는 얘기다. 아무리 층간소음 기준치를 맞춰 짓는다고 해도 생활소음을 완벽하게 차단하기 어렵다고 한다. 결국 이웃끼리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없이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감사원이 지난해 말 입주 예정이던 28개 공공·민간 아파트 191채의 층간소음을 측정했더니 96%(184채)는 기준 이하의 바닥재를 쓴 것으로 드러났다. 60%(114채)는 최소 기준치에도 못 미쳤다. 업자들이 시공 이후에는 바닥을 뜯어볼 수 없는 점을 악용해 부실 시공하거나 서류를 조작했다. 정부가 2004년부터 도입한 ‘바닥구조 사전인증제’가 제구실을 못하는 것이다.

정부도 층간소음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제부터라도 아파트 건설업자들이 농간을 부리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채희창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