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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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진정한 레전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인생 최고의 날을 맞았다. 그는 어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자유 메달’을 받았다. 자유 메달은 미국 정부가 국민에게 주는 최고의 훈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승리를 향한 우즈의 의지를 높이 평가한 뒤 “진정한 레전드(전설)이자 놀라운 선수”라고 말했다.

최고 훈장에는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미국의 정신이 담겨 있다. 미국은 선악의 단일 잣대로만 인간을 평가하지 않는다. 그의 공과를 넓게 보고 삶 전체를 조망한다. 설혹 개인에게 잘못이 있더라도 재기의 기회를 준다. 우즈도 그 기회를 잡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한국이라면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따지고 보면 우즈만큼 부침이 심한 선수도 없다. 그는 1996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데뷔 첫해에 2승을 거두고 이듬해엔 PGA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대회 최연소·최소타 우승 등 각종 기록을 갈아치웠다. 호사가들이 ‘우즈 전’과 ‘우즈 후’로 골프 역사를 나눠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 정도였다.

정상의 자리는 영원하지 않았다. 2009년 섹스 스캔들이 터지더니 뒤이어 부상의 불운이 그를 덮쳤다. 허리 통증으로 다리를 움직이기 어려웠고 밤새 뒤척이는 날이 많았다. 시동이 켜진 차 안에서 약물에 취한 채 잠들었다가 경찰에 체포되는 수모도 겪었다. 그의 세계 랭킹은 1199위까지 떨어졌다. 다들 우즈의 골프 인생이 끝난 줄로 여겼다.

하지만 그는 암흑의 터널을 뚫고 일어섰다. 불혹을 넘긴 그는 지난달 마스터스에서 마침내 정상에 올랐다. 황제의 귀환을 알리는 11년 만의 쾌거였다. 우리가 우즈에게 박수를 보내는 건 부상과 스캔들을 극복한 이런 불굴의 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3년 전 인공지능(AI) 알파고가 바둑에서 인간을 이기자 세계는 경악했다. 그러나 AI에겐 없는 게 있다. 고난, 좌절 그리고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용기가 없다. 왜 인간이 기계와 경쟁하려고 하나? 인간은 기계를 이용하면 된다. 인간이 진짜 고심할 일은 기계의 주인으로서 갖출 덕목이다. 그걸 인간성이라 부른다. 우즈가 보여준 인간 승리의 정신이 좋은 본보기가 아닌가.

배연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