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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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아무리 싸움 구경 재밌다지만…

G2 무역전쟁에 韓 피해… 강 건너 불 보듯 안돼

중국과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이 일단락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반중 정서가 대세다. 2017년 2월 사드 포대가 경북 성주에 처음 전개되자 중국은 각종 꼼수로 우리 기업과 국민을 괴롭혔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각종 규정을 들이밀면서 중국에 있는 한국 기업의 영업장을 들쑤셨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어서일 터다.

그래서인지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을 바라보는 여론은 미국 쪽에 기울어져 있다. 모르긴 몰라도 여론조사를 한다면 미국이 이기기를 바라는 국민이 훨씬 많을 듯하다. 무역전쟁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어느 정도 우리 정서가 엿보인다. 지난 11일 세계일보의 ‘미, 중 겨냥 대규모 관세투하…. 제2차 무역전쟁 발발’이라는 제목의 인터넷 기사에 달린 댓글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사드 보복할 때 좋았지 너희도 당해 봐라”, “중국 사람이 입으로 하는 약속은 절대 믿을 수 없다”, “미국 화끈하게 잘한다” 등 기사에 달린 100여개의 댓글 가운데 상당수가 중국을 비판하는 글이었다.

이우승 베이징 특파원

제2차 무역전쟁은 미국의 선공으로 시작됐다. 지난 10일(현지시간) 워싱턴 무역협상 중에 미국 정부는 2000억달러 상당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인상을 예고했다. 수세적이던 중국도 공세로 전환했다. ‘진지전’에서 ‘기동전’으로 흐름이 바뀌면서 전쟁 양상이 한층 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불구경 다음으로 싸움 구경이 재밌다고 한다. 하물며 응원하는 상대가 있는 경우엔 더욱 그렇다.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중국이 미국 공세를 방어선 밖으로 밀어내는 데 그치느냐, 아니면 더 나아가 앞으로 진격하느냐? 하는 것이다. 통상 공격 측이 방어 측보다 3배 많은 병력이 필요하다.

미국이 관세로 무역전쟁을 시작한 것도 미국이 수입하는 중국산 제품이 중국이 수입하는 미국산 제품보다 훨씬 많아서다. 기본적으로 중국의 관세 맞대응 보복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중국이 미국의 고지를 탈환하려면 관세 외에 다른 수단이 필요하다. 그래서 환율, 국채, 비관세 장벽 등 다양한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중국이 ‘관세대응’이라는 선을 넘을 경우 무역전쟁은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새로운 형태로 진전될 가능성이 크다. 말 그대로 ‘빅뱅’(Big Bang)이다.

향후 전개가 매우 흥미진진하겠지만, 마냥 이들의 혈투를 느긋하게 지켜볼 수만은 없는 것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어서다. 미국과 중국은 우리의 양대 교역국이다. 우리의 중국 수출품 80%가 중간재이며, 이들 중 상당수는 미국으로 재수출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무역전쟁 장기화로 가장 피해를 보는 국가로 한국을 지목했다. 무역전쟁의 결말은 미국이 중국산 수입을 축소하거나 중국이 미국산 수입을 확대하는 경우로 종결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어느 쪽이든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추락일로의 한국 경제를 생각하면 더욱 답답하다. 우리 1분기 경제성장률은 ‘- 0.3%’를 기록했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1.8%에 그칠 것이라는 일각의 관측도 있다.

20년 전 IMF 금융위기 당시 한 익명의 운동선수가 신문에 기고한 글이 있다. “온 나라에 정리해고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넘쳐났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회사는 가장 먼저 내가 있던 운동부를 없앴다.”

현재 우리의 상황이 이 선수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대통령과 정부, 정치권이나 국민 모두 한 치 앞을 못 보는 것은 마찬가지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을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우리 현실이 안타깝다.

 

이우승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