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또 ‘춘풍추상’인가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이 ‘춘풍추상(春風秋霜)’을 또 언급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2주년을 맞아 13일 청와대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다. 노 실장은 “‘성과를 내는 청와대, 소통하고 경청하는 청와대, 절제와 규율의 청와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춘풍추상이 사무실 액자 속 경구가 아니라 국민과 소통하는 현장에서 살아 있는 지침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청와대 직원들의 기강해이 사건들이 많았던 집권 2년차를 마감하며 3년차를 맞아 내부 단속에 나선 것이다. 지난 1월8일 노 실장의 취임 일성도 춘풍추상이었다.

춘풍추상은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따뜻하게 하고, 자신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차갑고 엄격해야 한다’는 뜻이다. 중국 명나라 말 홍자성이 쓴 ‘채근담(菜根譚)’에 나오는 ‘대인춘풍지기추상(待人春風持己秋霜)’을 줄인 말이다. 춘풍추상 액자는 지난해 2월 문 대통령이 비서관실에 돌린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2년차에 접어들면서 기강이 해이해질 수 있는데 초심을 잃지 말자”는 취지였다. 문재인정부 공직자들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것이었다.

원재연 논설위원

이런 다짐은 공허하게 들린다. 문 대통령은 엊그제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막말과 험한 말로 국민 혐오를 부추기며 국민을 분열시키는 정치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 지지자들을 비하한 자유한국당을 겨냥한 발언인 듯하다. 분열정치의 책임을 제1야당에 돌린 셈이다. 대통령이 정치권에 우려의 목소리를 낼 수는 있다. 하지만 한국당을 탓하기에 앞서 제1 야당을 향해 “도둑놈들”이라고 한 여당에는 책임이 없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국정운영을 책임진 청와대 또한 협치에 소홀하지 않았나 돌아볼 일이다.

여당 원내대표와 청와대 정책실장은 공무원 탓을 한다. 두 사람의 ‘공개된 밀담’은 문재인정부 핵심부의 인식을 그대로 보여줬다. 이들은 버스(파업)사태를 예로 들면서 “관료들이 말을 덜 듣는다” “잠깐만 틈을 주면 엉뚱한 짓을 한다”고 했다. 관료들의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을 비판한 것이다. 관료조직에도 문제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관료사회에 손가락질을 하기 전에 버스사태가 당·청의 무리한 정책 강행에서 비롯된 일은 아닌지부터 자성하는 게 순서다. “정부 출범 2주년이 아니고 4주년 같다”는 말도 당·청 핵심인사 입에서 나올 소리는 아니다. “스스로 레임덕을 인정하는 꼴”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두 사람은 ‘유체이탈’ 화법을 쓸 게 아니라 집권 2년을 4년 같게 만든 것이 누군지 곰곰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정부의 ‘남 탓 타령’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부와 청와대는 참담한 경제성적표를 받아들고는 국제환경과 언론 탓으로 돌린다. 검증 실패로 인사참사가 계속되는데도 ‘후보 탓’ ‘기준 탓’이라고 둘러댄다. 미세먼지는 물론 포항지진까지 과거 정권 탓이라고 주장한다. 집권 3년차에 들어서도 남 탓으로 일관하는 건 정상이 아니다.

문재인정부 앞에 놓인 환경은 녹록지 않다. 북한의 잇단 미사일 발사로 북핵 문제는 더 꼬였다. 대내외 경제 사정도 좋지 않다. 미·중 무역전쟁 수위는 높아지고 일자리 사정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북한 비핵화든 경제 문제든 야당 협력 없이는 풀기 어렵다. 야당과의 협치와 타협이 절실한 이유다. 남은 임기 동안 정책의 잘못을 인정하고 수정하는 일도 필요하다. 앞으로도 남 탓을 해서는 곤란하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오만과 독선이 신뢰의 위기를 부르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2년 전 취임사에서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다”고 약속했다. 감동적인 연설에 기대감을 한껏 부풀렸던 이들의 실망감이 커지고 있다. 청와대가 입으로는 ‘춘풍추상’을 외치면서 행동은 반대로 하는 까닭이다. 춘풍추상 액자가 사무실 장식용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국민은 여권이 진실하고 솔직하기를 바란다. 문재인정부 3년차는 남 탓을 멈추고 내 탓을 인정하는 일에서 출발해야 한다.

 

원재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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