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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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순 가까운 나이에도 식을 줄 모르는 그림 사랑

대형 회고전 여는 88세 박서보 화백 / 우리나라 추상미술의 대표적 선구자 / 64년 朴 화백 작품세계 망라한 전시회 / “내가 살아온 과정 다 드러냈다” 강조 / “작금의 디지털 시대는 스트레스 병동 / 보노라면 편안함 주는 그림 많아져야” / 한때 몹쓸 병마에… 떨치고 다시 그려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제2전시실. 형형색색의 대작들이 보는 이를 압도했다. 이 중 짙은 먹빛의 단색화 ‘묘법 No.991004’(1999)는 대작 중의 대작이다. 가로 2.2m, 세로 3.3m에 달한다. 언뜻 보면 슬레이트 같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노동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잡념이 사라진다. 박서보(88) 화백의 예술 철학이 녹아 있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박 화백은 “21세기 디지털 시대에서 지구가 ‘스트레스 병동’이 돼 가고 있는데 그림은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빨아들이는 ‘흡인지’가 돼야 한다”며 “그림을 보고 있으면 편안해지고 안정감과 행복감을 찾아가는 게 예술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박서보-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전시 전경. 대작들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수행자와 같은 치열한 삶의 기록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윤범모)은 올해 개관 50주년을 맞아 서울관에서 ‘박서보-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전을 연다. 지난 64년간 박 화백의 작품 세계를 망라한 대규모 회고전이다. 총 129점을 선보인다. 전시장 입구에서 관람객들을 맞는 신작 2점을 시작으로 관람 동선을 따라 작품 세계를 거슬러 올라간다.

박 화백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여는 건 이번이 두 번째다. 1991년 과천관에서 ‘박서보 회화 40년’전이 열렸다. 박 화백은 지난 16일 기자 간담회에서 “이번 전시는 다르다”고 힘주어 말했다.

“때로는 내가 숨겨 두고 싶었던 세계까지도 다 드러냈습니다. 내가 살아온 모든 과정을 다 드러냈어요. 회고전의 모델이 될 겁니다.”

그에게 그림은 수신을 위한 수행 도구였다. 수행자와 같은 삶이었다. “(1966년 모교인 홍익대 미술대학 시간강사를 관둔 뒤)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미술 평론가들이 서양의 회화 이론을 짜깁기하고 있었어요. ‘나 자신이 그러지 않았던가’ 반성하면서 매질을 시작했죠. 내 생각을 그림에 담아내는 게 아니라 나를 비워 내야 한다고, 그래야 다른 사람이 쉬어 갈 수 있다고, 그림은 수신을 향한 도구가 아니냐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비움의 미학이라 할 만한 박 화백의 묘법(描法)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번 전시를 담당한 박영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은 “묘법 이전이 그리는 그림이라면 묘법은 그리지 않는 그림”이라고 설명했다.

박서보 화백이 국립현대미술관 ‘박서보-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전에서 처음 공개하는 신작 ‘묘법 No.190227’. 그는 “수신과 치유를 동시에 잡는 그림”이라고 설명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병마도 꺾지 못한 예술혼… 수신 넘어 치유로

전시장을 둘러보다 보면 한 작가가 그린 게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작업의 스펙트럼이 넓다. 박 화백의 1950∼1960년대 작품은 물감을 흩뿌린 비정형이거나 서구의 옵아트, 팝아트를 연상케 한다.

1969년 미국인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사건은 박 화백을 충격에 빠뜨렸다. 그는 “(우주의) 무중력을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며 “붓은 그 자체에 탄력이 있어 저항이 생기는데 스프레이를 뿌려 그리니 화면에 저항이 없어졌다”고 했다.

박 화백은 결국 폐병에 걸렸다. 방독면도 소용없었다. 병마가 예술혼을 꺾지는 못했다. 1970년대 초기 묘법은 연필에서 출발했다. 캔버스에 유백색 물감을 칠한 뒤 물감이 마르기 전에 연필로 선을 무수히 그어 나갔다. 1980년대에는 한지를 사용했다. 캔버스에 한지를 여러 겹 붙여 한지가 마르기 전 손으로 긁거나 문질렀다.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손이 아닌 막대기나 자를 이용해 일정한 간격으로 한지를 밀어내 슬레이트 같은 질감을 표현했다.

시련은 또 찾아왔다. 2009년 뇌경색으로 쓰러진 것. 치유라는 예술의 역할을 강조하는 그 자신에게도 그림은 수신인 동시에 치유가 된 이유다.

“몸의 반쪽(다리)을 제대로 쓰지 못하게 돼 조수들을 썼습니다. 그때부터는 (수신이 아닌) 치유가 목적이었죠. 신작 2점은 연필 작품인데 과거의 연필 작품과 달라요. 컬러를 썼습니다. 또 지금은 앉았다 일어났다 할 수 없고 서서 일할 수밖에 없어요. 신작은 내 신체에 맞는 예술입니다. 수신과 치유를 동시에 잡는 그림이라 믿고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박서보-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란 대규모 회고전을 여는 박서보 화백.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예술가에겐 통찰력과 열정이 가장 중요”

박 화백은 예술가의 자질로 통찰력과 열정을 꼽는다.

“아날로그 시대에 70년을 산 사람입니다. 예술가에게 제일 중요한 건 책이나 교양, 철학이 아닙니다. 그 시대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 식을 줄 모르는 열정 이 두 가지만 있으면 모든 것을 극복해 낼 수 있습니다. 지식은 자기를 개방적으로 이끌어 가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21세기 디지털 시대인데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느냐, 자신이 없어요. 아날로그 시대의 성공을 그나마 유지하려면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끝까지 해보자’ 했죠. 오기가 많은 사람입니다.(웃음)”

결국 예술은 시대를 읽어 내야 하고 시대성과 무관해서는 안 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아날로그 시대 예술의 특징은 작가들이 이미지를 토해 놓으면 사람들이 그걸 사는 것이었다”며 “디지털 시대 예술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전시장 한쪽 벽면을 장식한 그의 좌우명 ‘변하지 않으면 추락한다. 그러나 변하면 또한 추락한다’는 문구가 다시 보였다. 전시는 오는 9월1일까지.

 

박진영 기자 jy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