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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 처리 법안, 日 18배?… '식물국회' 반론 사실일까 [FACT IN 뉴스]

통합당 박성중 의원 "해외比 처리 건수 많아" 주장 '사실' / 韓 20대 국회 법안 9139건 통과… 처리율 37.8% / 日, 정기회·임시회 등 종류 따라 국회 소집 / 2012~2016년 410건, 이전 4년에는 528건 통과 / "美·日, 韓과 달리 '양원제' 체제… 특성 달라" / 법안 처리 비율·숫자 아닌 내용 집중해야

[검증대상]

 

“20대 국회 법안 처리 건수, 해외와 비교하면 많다.”

 

‘식물국회’라는 오명을 쓴 채 지난달 29일 회기를 마무리한 20대 국회에 대해 미래통합당 박성중 의원이 색다른 평가를 내놓았다.

20대 국회는 국회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인 법안 처리 성적표가 초라하다. 역대 국회 중에서 법안 처리율이 37.8%로 가장 낮다. 처리되지 못한 1만 5000여 건의 법안은 자동 폐기됐다. 국민적 관심이 높은 법안은 21대 국회에서 다시 논의되겠지만 상당수는 사장될 가능성이 크다.

 

이와 달리 박 의원은 지난 1일 YTN 라디오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 “20대 국회에 제출된 법안 2만4000여건 중 9139건이 통과되면서 식물국회라는 평가를 받았다”며 “그러나 미국은 4년에 1000건, 일본은 500건밖에 통과가 안 되기 때문에 그렇게 평가하긴 이르다”고 주장했다. 

 

3일 세계일보가 확인한 결과 박 의원이 언급한 수치는 ‘사실’로 판정됐다.

 

[검증과정]

 

◆ “4년간 미국은 1000건, 일본은 500건 법안 통과” → ‘사실’

 

미국에서는 하원이나 상원에서 법안을 만들어 양원 표결을 통과하면 대통령이 법안에 서명해 법률로 확정한다.

‘GovTrack.us’ 캡처

미국 의회 관련 공공 데이터를 제공하는 ‘GovTrack.us’에 따르면 2000년대 이후 미국 의회는 각각 ▲115대 443건 ▲114대 329건 ▲113대 296건 ▲112대 284건 ▲111대 385건 ▲110대 460건 ▲109대 483건 ▲108대 504건 ▲107대 383건 ▲106대 604건의 법안을 제정했다.

 

미국 상원의원의 임기는 6년, 하원의원 임기는 2년이다. 의회 회기가 2년이라서 한국과 단순 비교하긴 어렵다. 4년을 기준으로 어림잡으면 최소 600여 건, 최대 1100여 건의 법안을 통과시킨 셈이다.

 

일본에서는 중의원이 제출한 중법, 참의원이 제출한 참법, 정부가 제출한 각법으로 나뉜다. 법률 제정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의회 의결을 통해 이뤄진다. 각 법안이 해당 상임위원회 심사와 양원 표결을 통과하면 법률로 확정된다.

‘주요국 입법절차와 현황’. 한국법제연구원 제공

일본은 정기회, 임시회 등 종류에 따라 국회를 소집한다. 지난 2017년 한국법제연구원이 ‘주요국 입법절차와 현황’에서 분석한 내용에 따르면 일본은 4년에 해당하는 181회차(2012.10.29.~2012.11.16.)부터 191회차(2016.08.01.~2016.08.03.)까지 총 410 건의 법안이 통과됐다. 그 이전 4년인 170회차(2008.09.24.~2008.12.25.)부터 180회차(2012.01.24.~2012.09.08.)까지는 총 528건의 법안이 통과됐다.

 

결국 “4년간 미국은 1000건, 일본은 500건의 법안이 통과된다”는 박 의원의 주장은 시기에 따른 차이가 있긴 하지만 ‘사실’이다.

 

◆ 한국은 왜 법안 처리 많을까? “미국·일본은 법안 심의에 오랜 시간 투자”

 

미국이나 일본이 한국보다 법안을 적게 통과시킨 건 무엇 때문일까. 전문가들은 미국과 일본이 지닌 ‘양원제’ 체제 특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정치 전문가인 경희대 안병진 교수는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미국에서 양원제를 운영하는 목적 자체가 빠른 결정을 내리기보단 신중한 심의 과정을 더 중요시한다”며 “심의과정이 복잡하고 어려워 한국에 비해 적은 법안이 통과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워싱턴DC 연방의회 의사당. EPA연합뉴스

일본정치 전문가 성공회대 양기호 교수는 “일본에선 정당 간 입장 차가 있을 시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하면 법안을 제정하지 않는다”며 “재적의원 과반이 동의하면 법안 통과할 수 있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여야간 협상을 담당하는 국회대책위원회라는 기구가 따로 있을 정도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야당과 조정을 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한국은 국회 법안 처리율이 꾸준히 떨어지기는 하지만, 처리된 법안의 절대적인 수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역대 국회가 처리한 법안 건수는 ▲16대 1579건 ▲17대 3766건 ▲18대 6178건 ▲19대 7429건 ▲20대 9138건이다. 제출된 법안도 ▲16대 2507건 ▲17대 7489건 ▲18대 1만 3913건 ▲19대 1만 7822건 ▲20대 2만 4073건으로 증가해왔다. 20대 국회는 20년 전인 16대보다 5.7배 많은 법안을 처리하고, 의원들은 9.6배 많은 법안을 제출한 것이다.

 

반면 법안 처리율은 ▲16대 63% ▲17대 50.3% ▲18대 44.4% ▲19대 41.7% ▲20대 35.3%로 떨어지고 있다.

 

20대 국회가 처리한 법안 숫자로는 역대 국회와 비교해 적지 않다. 제출된 법안이 가장 많은 상황임을 감안하면 가장 일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할 수만은 없다.

지난 20일 국회 본회의에서 공인인증서를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전자서명법 전부개정법률안(대안)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박 의원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발의된 법안들 자체는 법률상 단어를 ‘가무’에서 ‘노래와 춤’으로 바꾸는 수준의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도 많아, 처리된 법안이 많다고 좋은 것도, 적어서 나쁜 것도 아니다”라며 “많은 법안이 국회에서 처리되다보니 상임위원회 수준에서만 심의가 이뤄지고 본회의에 가면 법안이 무슨 내용인지 서로가 잘 모르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고 말했다.

 

[검증결과]

 

한국 국회, 특히 ‘식물국회’란 오명을 쓴 20대 국회가 처리한 법안 건수는 미국·일본과 비교해 적지 않다는 박 의원의 주장은 ‘사실’로 판정됐다. 20대 국회에서 한국은 9139건, 미국과 일본은 4년을 기준으로 어림잡아 각각 600∼1100건과 400∼500건의 법안을 처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런 차이는 상원과 하원 각각의 동의를 얻어야 해 심의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미국과 일본의 양원제 때문에 발생한다. 이에 비춰 박 의원의 발언 역시 법안 처리 비율이나 숫자가 아닌 그 내용에 집중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박혜원 인턴기자 won0154@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