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학생 미래 손아귀에 쥐고… 예술대학 교수들의 ‘권력형 폭력’

‘이화여대 관현악과 S교수, 동덕여대 문예창작학과 H교수, 성신여대 실용음악과 A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H교수…’

 

국내 ‘미투 운동’이 확산한 2018년 이후 성 비위 문제가 불거진 예술대학 교수들은 한둘이 아니다. 최근 서울대 음대의 B교수가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학 내 예술계열 학과의 권력형 폭력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5일 대학가에 따르면 대학원생 제자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서울대 음대 B교수는 현재 직위해제된 상태로 학교 징계위원회의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B교수는 지난해 7월 유럽 학회 출장길에 동행한 대학원생 제자의 방에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 등 성추행과 갑질을 해왔다는 의혹으로 서울대 인권센터의 조사를 받았다. 인권센터는 지난 3월 B교수에게 정직 12개월 이상의 중징계를 내려달라고 대학본부에 요청한 상태다.

 

해당 학과의 한 졸업생은 이날 통화에서 “입학 당시 선배들로부터 B교수를 주의하라는 말을 들었다”며 “B교수가 세미나 참여와 관련해 한 학생을 식당으로 불러내서는 ‘춤을 추러 가자’고 제안했다가 학생들의 항의를 받은 적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전공자 수가 적고 졸업 이후의 활동이 전공학과와 밀접하게 연계된 음악대학 특성상 학계 권위자에게 잘못 보이면 지속해서 지장을 받을 수 있는 구조”라며 “졸업생들 사이에서 해당 사건과 관련한 문제를 공유하고 있고 피해자와 연대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예술계열 학과의 성 비위 문제는 지속해서 불거져왔다. 지난해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박찬대 의원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6년∼2019년 7월 전국 4년제 대학의 교원 성 비위사건 징계 123건 가운데 예체능 계열 교수들의 비위가 22건(17.9%)으로 가장 많았다. 당시 4년제 대학 총 193곳 중에 서울 소재 일부 사립대를 포함한 70곳이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실제 성 비위 사건 및 징계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학생들은 교수의 성 비위 외에도 일상적 ‘권력형 폭력’이 발생해 왔다고 지적한다. 전국 34개 예술대학 학생들로 구성된 예술대학생 네트워크가 2019년 발간한 ‘예술대학의 성폭력·위계폭력 보고서’에 따르면 학생들은 교수의 부조리 사례로 △교수 티켓 강매 △선물 종용 △장학금 수거 △열정페이·권위페이(학교 및 교수 개인행사 무보수 강제동원) △인권침해 △성차별 등을 들었다.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 해결을 위한 2020 총선-국회 대학가 공동대응 기획단’의 홍류서연 단장은 “교수에 의한 권력형 성폭력·인권침해의 문제는 학문공동체 내에서 교수의 비대한 권력에서 기인한다”며 “특히 도제식 교육과 교수 라인에 의해 학생의 미래가 좌우되는 예술계에서 이 문제는 강화된다”고 비판했다.

 

신진희 성범죄 피해 전담 국선변호사도 “정량보다 정성적 평가가 이루어지는 만큼 학생들은 일상에서도 교수에게 ‘착한 아이’가 돼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며 “학생들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교육을 받아야 할 권리가 있고, 교수는 이를 절대 권력으로 활용하려는 권위 의식을 타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