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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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프리즘] 미래는 결정되어 있을까

20세기 카오스 이론에선
인간의 미래는 이미 결정
인식능력 한계로 예측불가
몰라서 자유롭다고 느낄 뿐

내일 아침 해는 어디서 뜰까? 전혀 가능해 보이지 않았던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라고 말한다. 해가 서쪽에서 뜰 수는 없다고 믿기에 이런 속담도 있는 것이리라. 그런데, 내일도 해가 오늘처럼 동쪽에서 뜰 것이라는 우리 모두의 확신의 근거는 무얼까?

내 삶에서 서쪽에서 뜨는 해를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주관적 경험이 확신의 근거가 될 수 있을까? 매일 아침 종소리에 맞춰 먹이를 먹는 양계장의 닭이 오늘 아침 종소리의 의미도 마찬가지라 믿는 확신과 다를 바 없는 얘기다. 오늘 종소리는 먹이가 아닌 죽음의 신호일 수 있다.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인간의 경험으로 규모를 확장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경험의 양이 무한대가 아닌 한, 경험은 예측에 개연성을 줄 수 있을 뿐, 확실성을 보장할 수 없다.

김범준 성균관대 교수 물리학

물리학을 이용하면 동쪽에서 뜨는 해를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근거를 어느 정도 찾을 수 있다. 지구의 공전과 자전은 미래가 결정되어 있는 뉴턴 역학의 운동방정식을 따르기 때문이다. 고전역학으로 동쪽에서 뜨는 해를 확신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지만, 치러야 할 큰 대가가 있었다. 만약 모든 것이 고전역학을 따른다면 우주의 미래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 오늘 집에 갈 때 버스를 탈지, 지하철을 탈지는 내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다. 버스든 지하철이든, 그렇게 선택하도록 우주가 탄생한 오래전 과거에 이미 정해져있었다. 바로, 고전역학이 보여주는 결정론의 세상이다. 모든 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고, 따라서 자유의지는 없다.

자유의지가 없다는 고전역학의 결정론은 불편할뿐더러, 우리 일상의 경험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우리는 매 순간의 선택으로 분기하는 미래를 눈앞에서 늘 바라보고 있다(고 느낀다). 우리가 늘 체험하는 정해지지 않은 미래와 고전역학이 보여주는 결정된 미래 사이의 관계는 흥미로운 문제다. 20세기 중반 카오스 이론은 결정되어 있어도 예측할 수는 없는 미래를 보여주었다. 물체의 처음 위치가 1.234567과 1.234568처럼 아주 조금만 달라도 미래의 위치는 서울과 부산처럼 엄청나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처음 상태를 무한대의 정확도로 파악할 수 없다는 인간의 지적능력의 한계가 카오스가 보여주는 예측 불가능한 미래의 이유다.

스위스 물리학자 니콜라 지생(Nicolas Gisin)이 흥미로운 제안이 담긴 논문을 발표했다. 무한대의 정확도로 우리가 물리적 성질을 규정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의 한계가 아닌 자연의 속성이라는 주장을 담았다. 독자도 한번 생각해보라. 어떻게 정의할지 우리가 모르는 무한개의 자릿수를 가진 무리수의 개수는 무한대다. 이 중 하나를 내가 종이에 써서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정보도 물리적이어서, 유한한 시공간 안에 담을 수 있는 정보는 무한대의 길이로 표현될 수 없다. 1.23456으로 적히는 물리량이 있을 때, 6 다음의 숫자가 7인지 8인지를 우리가 알 수 없다는 인식론적 한계가 카오스 이론의 예측불가능성의 근원이라면, 지생은 6 다음의 숫자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 자연이 가진 정보량의 한계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정해져있는데 모르는 것이 아니라, 미래는 객관적으로도 결정되어있지 않다는 주장이다.

뉴턴의 역학으로 동쪽에서 뜨는 해를 확신할 수 있게 된 것은 큰 축복이었다. 하지만 이면에는 자유의지의 존재를 허락하지 않는 딱딱한 결정론의 세상이 숨어 있었다. 20세기 카오스 이론은, 결정되어있지만 예측할 수는 없는 미래를 보여주어 약간의 숨통을 틔워주었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았다. 미래가 아직 결정되어있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이유는 인간이 가진 주관적 인식 능력의 한계로 보였다. 우리는 몰라서 자유롭다고 느낄 뿐, 진정 자유로운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최근의 논의는 다른 얘기다. 미래의 비결정성이 인식론의 문제가 아닌 우주의 존재론적 속성일 가능성에 대한 제안이다. 자유의지는 무지에 기반을 둔 환상이 아니라, 어쩌면 우주의 내재된 속성일 수도 있겠다. 미래는 결정되어 있는 것일까? 다가올 미래의 물리학이 답을 줄 수 있을까?

 

김범준 성균관대 교수 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