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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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가스 방치 땐… 갯벌 줄고 습지가 가둔 탄소 풀려 ‘2차 재앙’ [연중기획-지구의 미래]

전남 함평만 일대 갯벌 물가에 도요물떼새들이 모여 있다. 국립생태원은 기후 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갯벌에서 쉬어가는 철새들도 위협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가운데 흰 새는 백로류.

보랏빛이 도는 청람색부터 옅다 못해 잿빛이 비치는 하늘색까지 푸르스름한 날개가 특징인 산푸른부전나비는 4∼5월 지리산부터 충청·강원·경기도 산지에서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60년쯤 후인 2080년 4월이 되면 산푸른부전나비는 국내에서 볼 수 없을지 모른다. 온도 변화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먼 미래의 일도 아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계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곤충을 포함해 많은 야생동·식물이 군락을 형성한 지리산 아고산대(고산지대 아래 산림생태계)에서는 우리나라 고유종인 구상나무가 무더기로 고사했다. 아고산대의 생물종은 더 이상 위로 올라갈 수 없다 보니 기후변화 같은 외부 충격에 유연하지 못하다. 도망갈 곳이 없는 생물종이 생존할 수 있도록 도울 조치가 시급한 시점이다.

17일 환경부 산하 국립생태원에 따르면 지금 같은 기후변화 추세가 지속되면 한반도 생태계는 2100년 안에 현 시점에서 가늠하기 어려운 변화에 직면할 수 있다. 국립생태원은 지난 15일 국내 생태계가 어떻게 변할지 연구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번 연구는 온실가스 배출량과 그에 따른 온도 상승 예상치를 계산한 대표농도경로(Representative Concentration Pathways·RCP) 시나리오를 따랐다. 상당한 온실가스 저감정책이 실현된, 저탄소 시나리오인 RCP4.5와 온실가스 저감정책을 펼치지 않고 현 추세대로 배출하는 RCP8.5 두 가지 시나리오에 따라 우리나라 생태계가 어떻게 바뀔지 비교했다.

◆도요물떼새는 언제까지나 돌아올까

지구 온도가 올라 해수면이 상승하면 갯벌도 위협받는다. 해수면 상승만으로 갯벌 면적이 감소한다고 단정할 수 없지만 바다에 잠기는 부분이 많아지면 면적이 줄어드는 것은 쉽게 예상 가능하다.

국립생태원은 해수면 높이와 관련해 온도 상승에 따른 두 가지 시나리오를 비교했다. RCP4.5 시나리오 기준 매해 4.5㎜씩, RCP8.5 시나리오 기준 매해 6.3㎜씩 상승한다고 가정했을 때 2100년이면 해수면 높이는 현재보다 각각 0.48m, 0.64m 높아진다.

두 시나리오 간 해수면 높이 차이는 0.2m도 안 되지만, 갯벌 생태계에는 20%도 넘는 차이를 유발한다. 국립생태원은 서해안과 남해안 일대 갯벌 162개 중 갯벌 최저 수위가 해수면보다 높은 곳을 빼고 총 112곳을 분석했다. RCP4.5 시나리오에 따르면 갯벌 51곳이, RCP8.5 시나리오에 따르면 64곳이 해수면 상승 영향권에 들 위험이 있다. 강화도 일대, 태안, 남해, 거제 등에 있는 큰 규모 갯벌은 경사가 완만해 특히 해수면 상승에 취약할 것으로 분석됐다.

갯벌 면적이 감소하면 갯벌에 기대 생계를 이어온 사람만 위태로워지는 게 아니다. 봄가을 우리나라를 찾는 대표 철새 무리인 도요물떼새는 영종도 등 서해안에 주로 출현한다. 도요물떼새는 봄철에 번식을 위해 북상하는 도중 서해안 갯벌에서 먹이를 구하고 쉬며 체력을 비축한다. 해수면이 높아져 갯벌이 줄면 도요물떼새가 발디딜 공간도 작아진다. 게다가 갯벌에 살던 조개, 갑각류 등 저서무척추동물이 바닷속으로 숨어버려 철새의 먹잇감도 줄어든다. 온도 상승 정도에 따라 많게는 64개 갯벌에서 도요물떼새의 먹이원이 감소할 위험이 상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갯벌 먹이 감소가 철새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는 것은 과학계에 주어진 과제다.

◆습지가 가둬온 탄소가 봉인해제될 시점이 다가온다

습지는 수많은 생물종의 서식지이자 유전인자의 저장고다. 우리나라에서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곳은 총 44개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는 전체 생물 총수는 4만9027종으로, 이 중 4187종(8.9%)은 습지보호지역에서 서식한다. 멸종위기야생동물로 좁히면 습지의 생태적 기능이 더 뚜렷하다. 국립생태원에 따르면 멸종위기야생동물 전체 종이 267종인데 그중 60종은 습지보호지역에서 살고 있다.

강원 점봉산 내륙습지. 습지는 막대한 탄소를 가두는 농축된 '탄소저장고'다.

습지는 물과 육지의 환경을 모두 갖춰 물고기와 육상동물이 공존하고 새들도 쉽게 먹이를 구하는 장소다. 다양한 생물이 먹이사슬을 이루니 생물의 생산력도 증가한다. 또 일부 습지식물은 중금속을 세포조직 안에 10만배 농도까지 축적할 수 있다.

이뿐 아니라 습지는 탄소를 가둬 기후변화를 막는 중요한 보루다. 생태학계에서는 지구 지표면의 약 6%를 차지하는 습지가 지상에 존재하는 탄소의 40% 이상을 저장할 수 있다고 본다. 탄소 저장능력이 특히 뛰어난 습지를 ‘이탄습지’라고 따로 부른다. 식물이 오랜 시간 물에 잠겨 쌓이면서 탄소 저장성이 높아진 곳이다. 채 분해되기 전 습지에 두껍게 퇴적된 식물에 혼합물 형태의 탄소가 축적된다. 습지 자체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농축된 ‘탄소 저장고’가 되는 셈이다.

온도 상승으로 습지 생태계가 망가지거나 말라버린다면, 물 속에 가둬왔던 탄소가 대기 중에 대거 방출돼 기온 상승을 부추기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이번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홍승범 국립생태원 기후변화연구팀 선임연구원은 “이탄습지의 육화가 진행되면 습지 자체는 적은 면적일지라도 대기 중 탄소 배출의 원인이 되는 결과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른 습지의 미래상은 극단적이다. RCP4.5 시나리오에서는 호수, 산지습지 등 우리나라 내륙습지 2500여곳 중 70% 이상이 오히려 상태가 좋아질 것으로 예상됐다. 기온이 오르고 강수량이 늘어나며 습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가뭄으로 서식환경이 악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습지는 22개에 그쳤다.

반면 RCP8.5 시나리오에 따른 전망은 비관적이다. 2500개 습지 중 약 20%인 657개가 가뭄 등으로 서식환경이 바뀔 위험에 놓인다. 일반적인 기후변화 시나리오에선 온도가 올라갈수록 강수량이 늘어나는 추세를 예상하나 RCP8.5 시나리오에서는 온도 상승 속도가 너무 가파르고 계절별 강수 편차가 심해 가뭄에 취약해질 습지가 훨씬 많아졌다.

한라산 구상나무. 한라산과 지리산 아고산대에서는 우리나라 고유종인 구상나무가 무더기로 고사하고 있다.

◆한두 종의 소멸, 결국 인간 덮치는 파도 될 수도

이렇듯 산림, 연안, 육지 생태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변화가 이어지면, 생태원이 연구한 국내 야생동·식물 5700여종 중 336종이 멸종할 수 있다는 것이 보고서의 판단이다. 홍 선임연구원은 “336종이란 숫자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며 “우리나라에 훨씬 더 많은 종이 있는데 전국적으로 분포한 종만, 그 안에서도 통계적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는 종만 분석해 5700종 정도를 분석했다”고 설명했다. 희귀종은 이번 평가에 포함되지 못했다.

336종이 멸종했을 때 생태계 시스템이 받을 영향은 예상 가능한 영역을 넘어선다. 일부 종이나 서식지 변화에 남은 생물종이 자연스럽게 적응하면 전체 생태계는 큰 문제 없이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생물종이 얼마나 잘 적응할지 불투명하고, 특정 환경에 특화된 종일수록 자연스럽게 적응할 기회조차 박탈당하면서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생태학자들은 우려한다. 홍 선임연구원은 “특정 생태계의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어느 정도까지 파급력이 있을지는 너무 복잡해 아예 손도 못 대는 상황”이라며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종인 고라니가 우리나라에서는 위해생물이듯이 이런 시스템 붕괴는 결국 사람에게 돌아오게 된다”고 말했다.

생태계서비스는 생태계 변화가 어떤 경제적 파급효과를 미칠지 연구하는 분야다. 주우영 국립생태원 생태계서비스연구팀 책임연구원은 지리산 구상나무와 울진 금강소나무 소멸은 우리의 문화적 자산을 잃는 일이자 여가와 심미적 기능을 하는 자연경관이 사라지는 일이라고 했다. 주 책임연구원은 “나무가 소멸하면 서식지가 사라지니까 곤충과 그 상위 동물의 연쇄적 소멸로 이어진다”며 “우리나라 대표적인 텃새인 박새도 곤충이 적어져 먹이사슬에 문제가 생기면 국내에서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변화는 결국 인간의 식량 문제와 대기질 악화, 수재로 이어지게 된다”고 밝혔다.

 

박유빈 기자 yb@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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