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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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도 다녀간 완주 술테마박물관, 대폿집 향수 가득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술 빚는 아낙네... 취중진담 정겨운 대폿집 풍경 가득
술의 역사·제조법 한눈에 유물도 5만여점 전시
‘완주 5미’ 묵은지 닭볶음탕에 완주 고택찹쌀생주 찰떡궁합
대한민국술테마박물관 대폿집 풍경

‘드르륵, 대강 끄적인 차림표를 붙인 문을 들어서면 드럼통을 반으로 잘라 만든 둥그런 탁자가 나를 반긴다. 거나하게 취해 노랫가락, 젓가락 장단에 고단한 하루 시름을 풀었던 대폿집 푸근함이 그립다.’ 그래, 세월이 묻어나는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와 막걸리 잔. 한잔 술에도 무거운 어깨를 짓누르던 짐을 잠시 내리고 마냥 행복했었지. 대한민국술테마박물관의 ‘인정 많았던 서민의 안식처’ 대폿집 앞에 서서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떠난다.

박물관 전경
술항아리

#BTS도 반한 우리 술 이야기

 

‘완주 BTS 힐링 성지’. 전북 완주 구이면 덕천전원길 대한민국술테마박물관 입구에 들어서자 BTS 멤버들 조형물이 어서 인증샷을 찍으라며 여행자들을 부른다. 요즘 가장 핫한 BTS가 완주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한국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서머패키지 영상을 촬영했는데 이곳도 다녀갔나 보다. 갓을 벗고 평상에 편안하게 앉아 흐드러진 벚꽃을 배경으로 술잔을 기울이는 두 선비 조형물과 넓은 마당을 가득 채운 술항아리는 호기심을 잔뜩 끌어당긴다. 벚꽃과 붉게 타는 듯한 개복숭아꽃, 화려한 자목련이 푸른 하늘과 어우러지는 풍경이 매우 예뻐 봄나들이하기 아주 좋아 보인다.

술 마시는 선비상
BTS 포토존

경각산과 구이저수지를 거느린 수려한 자연 속에 자리 잡은 술테마박물관은 기대 없이 찾았다가 깜짝 놀라고 나오는 곳이다. 박물관 하면 고리타분하다는 선입관을 갖게 마련이지만 이곳은 볼 것 많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우리 삶과 아주 밀접한 술을 테마로 삼았기 때문인 것 같다. 과하면 몸을 해치지만 적당히 즐기면 인생을 더 즐겁게 만드는 술은 우리 삶과 뗄 수 없다. 술테마박물관은 전시물 5만여점을 통해 풍류와 여유 가득했던 우리 술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를 오롯이 전한다.

1층 술꾼상 

1층에서 계단을 오르며 박물관 투어를 시작한다. 포졸인 듯, 보부상인 듯한 아재가 항아리 위에 걸터앉아 술 담긴 호리병 들고 익살스럽게 활짝 웃으며 여행자를 반긴다. 계단을 따라 누룩 디디기, 탁주를 거를 때 쓰던 체와 쳇다리, 냉각수를 넣어 술의 산패를 막던 동수 항아리, 소주 고리 등 유물들이 놓였다. 1층 계단 끝은 황금술탑. 세계의 모든 술을 탑처럼 쌓아 놓았다. 2층 기획전시관에는 ‘한잔하세 – 자네와 나는 친구야 친구’가 전시 중이다. 마차집, 선술집 간판과 ‘왕대포’ 입간판이 세워진 대폿집이 추억을 소환한다. 벽지 대신 바른 빛바랜 1975년의 신문과 그곳에 등장하는 사건들까지 완벽한 재현에 놀란다. 광복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 저렴한 술과 안주값으로 술꾼들의 오아시스 역할을 하며 우리나라 술 문화를 대표하던 대폿집의 시간들이 잘 담겼다.

계단에 적힌 술 얘기

계단을 따라 술 관련 얘기들도 빼곡하게 적혔다. 한 잔 술은 재판관보다 빨리 분쟁을 해결한다, 술맛의 90%는 마주앉은 너, 술이 들어가면 지혜가 나온다, 술이 없는 지구는 산소 없는 지구다, 오늘 마실 술 내일로 미루지 말자 등등. 이런 주옥같은 ‘명언’들을 어디서 다 끌어모았을까. 기분 좋은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술빛는 아낙네
대폿집 풍경

4층 상설전시관은 우리 술 역사를 빼곡하게 담았다. 술꽃피는 역사관에는 수장고를 모티브로 다양하고 방대한 유물이 주제별로 전시 중이다. 술을 빚는 여섯 가지 재료가 있다. 쌀, 물, 누룩, 온도, 그릇 그리고 술 빚는 이의 마음이다. 술의 재료와 제조관에서는 이런 술 재료와 발효과정, 밑술·덧술의 제조방법, 거르는 형태에 따라 청주·탁주·소주로 만들어지는 우리 술의 얘기들을 만난다. 술 빚는 아낙네들 풍경이 실물처럼 잘 만들어져 있다. ‘대한민국 술의 역사와 문화관’에서는 우리 술의 시작부터 일제강점기 전통주 말살기까지의 역사적 자료, 관혼상제에서 술의 역할과 의미, 손님접대와 제사를 위한 가양주 빚기와 술자리예법, 주안상차림을 엿본다.

김치닭볶음탕

#묵은지 닭볶음탕 먹어야 완주 맛의 완성

 

박물관의 실물 같은 음식과 술을 한참 보니 출출하던 터에 식욕이 솟구치며 막걸리 한잔 걸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마침 저녁때라 완주의 맛을 찾아 나선다. 완주 사람들은 음식 맛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요즘에 멋진 카페와 맛집이 많이 생겨 ‘맛의 고장’ 전주 사람들도 외식하러 완주로 많이 올 정도란다. 완주의 다섯 가지 맛 중 하나가 묵은지 닭볶음탕. 묵은지 갈비찜은 많이 먹어봤어도 닭과 함께하는 묵은지는 처음이다. 맛집 대승가든을 찾아 김치닭볶음탕을 주문한다. 5만5000원인데 4명이 충분하게 먹을 수 있다. 항아리 뚜껑처럼 커다란 질그릇에 거의 김치 한 포기가 담긴 듯 양이 어마어마하다. 묵은지를 들어 올리자 토종닭인지, 팔뚝만 한 닭다리가 매콤한 양념을 두른 채 모습을 드러낸다. 묵은지에 싸서 한입 베어 물면 부드러운 닭고기 육질과 깊은 향이 담긴 묵은지가 환상적으로 어우러져 입꼬리가 귀에 걸린다.

고택찹쌀생주

여기에 완주의 맑은 물로 빚은 고택찹쌀생주 한잔 곁들이면 완벽한 궁합이다. 국내산 찹쌀 100%와 우리 밀로 만든 누룩만 사용해 15일 동안 숙성시키며 옛 선조들이 즐기던 전통 가양주 방식으로 만들었다. 살균하지 않고 방부제도 사용하지 않은 생주라 효모가 잘 살아있다. 알코올 도수는 12%이고 탁주이지만 술이 아주 맑다. 새콤하고 쌉싸름한 산미와 누룩향, 찹쌀에서 오는 적당한 당도의 밸런스가 뛰어나다.

카페 애드리브

화심 두부와 순두부찌개도 완주를 대표한다. 화심리 두부마을을 찾으면 되는데 ‘화심집’으로 불리던 원조화심두부가 맛집이다. 천연간수만 사용해 옛 방식으로 가마솥에서 쪄서 만든 두부는 담백한 식재료 본연의 맛을 잘 살렸다. 입안에서 녹는 듯 부드러운 식감이 일품이다. 대둔산 입구에 있는 대둔산골에서는 오로지 버섯만으로 진한 국물 맛을 우려내 숲의 향이 가득 담긴 자연산 능이버섯전골을 즐길 수 있다. 카페 애드리브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커피 한잔 하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다. 넓은 정원의 쿠션에 편안하게 누워 인근 상관 공기마을 편백나무숲에서 쏟아지는 상쾌한 공기와 푸른하늘을 감상하며 봄날을 즐길 수 있다. 

 

완주=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