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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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구단주 형들의 ‘찐야구 사랑’

2021년으로 프로야구가 40번째 시즌을 시작했다. 사람으로 치자면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의 연배가 된 셈이다. 이 기간 프로야구는 대한민국 최고 인기 스포츠로 자리 잡으며 질적·양적으로 성장해 왔다.

이는 아낌없는 투자를 해온 구단주들의 야구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중에서 서울 잠실구장에서 ‘한 지붕 두 가족’으로 지내는 두산과 LG 구단주의 야구 애정은 유명하다. 프로야구 원년부터 지금까지 KBO리그를 지켜온 두산은 창단 주역인 고(故) 박용곤 회장부터 현 구단주인 박정원 회장까지 그룹 총수가 바뀌어 왔어도 야구단에 대한 지극한 사랑은 이어지고 있다. LG가(家) 역시 야구를 좋아하는 것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고 구본무 회장과 구본준 고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3형제가 모두 야구인이라 불릴 정도다.

송용준 문화체육부 차장

삼성그룹의 고 이건희 회장도 일본 유학 시절부터 야구를 좋아해 삼성 라이온즈 초대 구단주를 맡기도 했고 구단에 엄청난 지원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혼수상태이던 2014년 5월에는 병상 TV 중계에서 나온 이승엽의 홈런 소식에 반응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다만 대한민국 재계를 대표하는 삼성과 LG는 이재용 부회장과 구광모 회장 체제로 넘어가면서 선대 때보다는 야구에 대한 애정이 덜하다는 말도 들린다.

대신 야구에 대한 애정을 쏟을 새 구단주들이 그 자리를 채워가고 있다. 김택진 NC 구단주와 올해 새롭게 구단을 인수해 SSG 랜더스라는 이름으로 프로야구에 뛰어든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바로 그 주역들이다.

김택진 구단주는 창단식에서 IT(정보기술)기업의 수장답게 직접 프레젠테이션에 나서 야구단에 대한 열정을 직접 설명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과감한 투자로 창단 9년 만에 팀을 챔피언으로 등극시켰고 우승 트로피를 들고 자신의 우상이었던 최동원 선수의 영정을 찾기도 했다. 특히 김 구단주는 팬들로부터 ‘택진이 형’으로 불리며 친숙하게 다가섰고, 이런 이미지를 모기업인 엔씨소프트의 주력 게임의 광고에 직접 등장하는 방식으로 활용해 매출 증가에도 도움을 받았다. NC가 우승 세리머니로 게임 아이템인 집행검을 들어 올린 장면은 야구와 모기업의 시너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됐다.

올해는 정용진 부회장이 ‘용진이 형’으로 불리며 야구판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모두가 궁금해하지만 보안이 생명인 창단 준비 과정에 대해 구단주가 스스로 스포일러가 돼 정보를 흘려 오히려 더 높은 관심을 불러 모았다. 더 나아가 유통 라이벌인 롯데를 자극해 라이벌 구도를 만들어 가는 데도 앞장섰다.

김택진, 정용진 두 구단주가 야구를 사랑하는 마음은 다른 구단주들과 다를 바 없지만 한 세대 위 구단주들과는 분명한 차별점이 있다. 이전 구단주들이 야구 사랑을 투자와 지원으로 표현한 ‘아버지’의 이미지였다면, 새 구단주들은 ‘형’이라는 친근함을 앞세워 모기업의 성장 동인에 자신의 야구 사랑을 접목하는 이른바 ‘구단주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한때 야구단을 두고 일부 재벌의 비싼 취미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이제는 구단주의 야구 사랑을 마케팅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형님’들이 보여주고 있다.

 

송용준 문화체육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