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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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이목지신

중국 양명학자 이탁오는 이런 말을 했다. “진시황은 천고일제(千古一帝)다.” 천년에 한 번 나오는 위대한 황제라는 뜻이다. 사람 목숨을 파리처럼 여겼다는 진시황. 왜 칭송한 걸까. 전쟁으로 얼룩진 전국시대를 끝내고 역사의 물꼬를 바꾸었기 때문일까. 그런 진시황은 이런 말을 했다. “천하가 끝없이 싸운 이유는 제후가 있기 때문이다.”

진의 통일시대. 누가 떠받쳤을까. 법가 사상가들이다. 상앙은 그중 한 사람이다. 그는 법가 개혁을 주도한다. 천하의 법을 통일하고 문자·도량형·화폐도 한 가지로 만들었다. 쉬웠을까. 아무도 따르지 않았다. 믿음이 없었으니. 상앙의 말, “법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백성이 믿고 따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찌했을까. 도성 남문 밖에 석 장(丈) 높이의 큰 나무 기둥을 세웠다. 그리고 방을 붙였다. “누구든 이 기둥을 북문으로 옮겨 놓는 사람에게 십 금(金)을 주겠다”고. 모두 시큰둥해했다. 이번에는 “오십 금을 주겠다”고 써 붙였다. 그러자 한 사내가 기둥을 옮겼고, 그에게 약속한 돈을 줬다. 태자가 법을 어기자 그의 스승을 처형했다. 이후 백성이 믿고 따랐다고 한다. ‘사기’에 전하는 상앙의 이목지신(移木之信) 고사다.

믿음은 모든 일의 알파요 오메가다. 믿음을 잃으면 만사가 허사로 변한다. 법치는 특히 그렇다. 법을 집행하는 국가기관이 믿음을 잃으면? 두꺼운 법전은 아궁이 불쏘시개로 바뀐다. 그 후 어떤 일이 벌어질까. 권력자에 의한, 권력자를 위한, 권력자의 법치. ‘정글의 시대’가 열린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두고 불신이 번진다. 피의자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황제 조사’. 그는 검찰총장 물망에 오르내린다. 그를 공수처장 관용차로 모셔 와 CCTV도 없는 조사실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조사 기록을 남겼는지도 알 길이 없다. 비서관 특혜채용 논란. ‘김학의 기획사정 의혹’ 사건 피의자인 이규원 검사 조사를 두고도 말이 오락가락한다.

공수처법 제정 때부터 ‘권력형 비리 감추기’ 의심을 받은 공수처. 이런 말을 한다. “두껑을 여니 역시나….” 상앙의 이목지신을 아는 걸까, 모르는 걸까.

강호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