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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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서 나눴던 희망, 삶의 원동력”… 기부 이어가는 ‘햄버거 아저씨’

16일 세월호 7주기
배 침몰 장면 보고 무작정 내려가
자비로 1년간 하루 1800개 나눠
가족 동원… 운영하던 가게도 팔아

해마다 ‘그날’ 기리며 피자 기부
지금도 캄보디아에 마스크 보내
“누구나 사고 닥쳐… 서로 도와야”
‘햄버거 아저씨’ A씨가 자신의 가게에서 “나누는 것이 삶의 기쁨”이라며 웃고 있다. A씨는 이름 밝히길 꺼렸지만 사진 촬영에는 동의했다. 장한서 기자


“처음엔 뭘 해야 한다는 생각도 없이 그냥 내려갔어요. 저 배에 사람이 많이 탔다는데 큰일났다, 구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2014년 4월16일 경기도 가평에서 햄버거·피자 가게를 운영하던 A씨는 뉴스에서 세월호가 가라앉는 장면을 보자마자 팽목항으로 달려갔다.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수백명이 배와 함께 가라앉은 유례 없는 상황에 사람들은 우왕좌왕했다. 제대로 먹을 것조차 없는 상황을 보고 가게로 올라와 조리기구 등을 챙겨 다시 내려갔다. 팽목항 한편에 천막을 세우고, 햄버거를 만들어 날랐다. “구조하는 사람들을 먹여야 아이들을 구할 수 있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저 ‘지치고 힘든 사람들을 먹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은 1년 동안 이어졌다. 이름조차 밝히지 않고 묵묵히 팽목항을 지키는 그를 사람들은 ‘햄버거 아저씨’라 불렀다. 세월호 참사 7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기자와 만난 A씨는 “특별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자신의 이름을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그는 가족들까지 동원해 매일 1800개가 넘는 햄버거를 만들고, 실종자 가족과 자원봉사자, 잠수사, 인근 어민들의 끼니를 챙겼다. 비용은 자비로 충당했다. 가게를 팔고, 갖고 있던 땅까지 팔았다. A씨는 “어릴 적 어머니가 호떡 장사를 하셨는데 가난한 사람에게는 공짜로 나눠줬다”며 “팽목항에서 봉사활동을 한 것도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팽목항에서 보낸 시간은 그에게도 슬픔이었다. 긴 시간을 보내며 거의 매일 실종자 가족들의 울음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도 팽목항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은 그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음식이니까요. 입맛이 없다며 굶던 분들이 햄버거를 먹는 모습을 보면 그걸로 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씨는 지금도 교복 입은 학생들을 보면 세월호가 떠오른다고 했다. 얼마 전 27세의 나이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조카는 세월호를 다시 떠오르게 했다. 조카는 세월호 참사 당시 A씨를 도와 팽목항에서 햄버거를 날랐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까지 햄버거 재료비로 쓰라고 주던, 한없이 착한 조카였다. A씨는 “가족을 잃어보니 ‘세월호 희생자들의 부모님들이 얼마나 아팠을까’란 생각이 새삼 들었다”며 “나 역시 갑작스레 죽을 수 있으니 더 보람있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로도 나눔의 삶은 지속됐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기간 그는 의료진에게 음식을 제공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마스크 품귀 현상이 일어났을 때에는 대구 지역에 마스크를 보냈다. 지금도 마스크 수급이 어려운 캄보디아 등 해외에 마스크를 보내고 있다. 그는 “사고는 자신이나 가족에게도 언제든 닥쳐올 수 있는 일”이라면서 “어려울 때 서로 위로해주고 돕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세월호 참사 7주기엔 세월호를 기억하는 의미가 담긴 피자를 만들어 주변에 전달할 예정이다. 세월호 희생자 인양에 나섰던 잠수사들이 먹기 좋도록 공룡알 모양의 피자를 만들어줬던 그가 매년 이맘때가 되면 연례행사처럼 해오던 일이다. 그는 “어려움에 닥친 사람들이 도움을 받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면 나 역시 위로가 된다”며 “그런 마음들이 내 삶의 원동력”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유지혜·장한서 기자 kee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