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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분홍색은 여자 것, 파란색은 남자 것… 소비자 편의? 성 고정관념! [뉴스투데이]

온라인 아동복 매장 보니
남아 카테고리선 분홍 옷 없어
파란·초록색 남아용으로 구분
유명 아동복 브랜드 사정 비슷
“소비자 보기 편하게 나눈 것”
인권위 “성별 구분짓기 바꿔야”

“친구들이 내껀 여자색이래.”

 

6살 남자아이를 키우는 정모(39)씨는 얼마 전 어린이집에 다녀온 뒤 시무룩해진 아이를 달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어린이집에 분홍색 개인컵을 들려 보냈는데 친구들로부터 “여자컵을 쓴다”며 놀림을 받았다는 것이다. 정씨는 “아이가 분홍색을 좋아해서 컵도 직접 골랐는데 친구들이 놀리니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며 “‘나는 남자니까 파란컵을 사야 한다’고 말해서 ‘남자색, 여자색은 없다’고 알려줬지만 고집을 부려 결국 파란컵을 사서 보냈다.

 

어린아이들인데도 벌써 색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남자는 파란색, 여자는 분홍색’. 유아용품에서 빠질 수 없는 공식이다. 어릴 때부터 일상적으로 접하는 성별에 따른 색 구분이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유아용품 업계에서는 여전히 성별에 따른 색 구분을 당연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4일 세계일보 취재 결과 많은 아동복 판매 사이트는 ‘남아용’, ‘여아용’으로 카테고리를 나누고, 디자인이 아닌 색에 따라 남아·여아용 옷을 구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파란색·검은색 티셔츠는 남아용 카테고리에서만, 분홍색 티셔츠는 여아용 카테고리에서만 판매하는 식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국내 대형 아동복 브랜드인 A사의 경우 분홍색 줄무늬가 있는 상하복은 ‘여아 상하’란 이름으로, 진한 초록색 카디건이 있는 상하복은 ‘남아 상하’란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다. B사는 아무런 무늬가 없는 파란색·검은색 티셔츠에 ‘남아 반팔티’란 이름을 붙이고 남아용 카테고리에서만 판매한다. 여자아이도 충분히 입을 수 있는 디자인이지만, 여아용 카테고리에서는 해당 옷을 찾을 수 없다.

 

C사는 오프라인 매장을 ‘남아용’ 공간과 ‘여아용’ 공간으로 구분해놨는데, 파란색·회색 계열의 티셔츠는 남아용 공간에만 있다.

 

업체들은 소비자 편의를 위한 구분이라고 설명했다. A사 관계자는 “소비자가 보기 편하게 나눈 것”이라면서도 “성별 고정관념을 심어주는 것이란 지적이 있어 제품명에서 ‘남아·여아’ 명칭을 빼는 방안 등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4살 남자아이를 키우는 이모(37)씨는 “화사한 색 옷을 골랐는데 매장 직원이 ‘이건 여자애들 옷’이라고 할 때도 있다. 여아용 카테고리에 있는 옷이면 사기 망설여진다”며 “아이 때는 성별에 따른 체형 차이가 없어서 치마가 아니면 남아·여아용으로 구분할 필요가 없는데 왜 색으로 구분하는지 모르겠다. 업체는 소비자 편의라고 하지만 브랜드에서 그런 이미지를 고착화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영유아제품 업체들이 ‘분홍색은 여아용, 파란색은 남아용’ 등 성별에 따라 색을 구분하는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은 영유아제품 업체가 색으로 성별을 구분하는 등 아이들에게 성 역할 고정관념을 강화한다며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는 “영유아기는 성 역할 고정관념 등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 쉬운 시기”라며 “기능과 무관하게 성별에 따라 색을 입히는 행위는 성 역할 고정관념을 학습하게 하는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정치하는 엄마들의 강미정 공동대표는 “유아동 제품에 성별 구분 표기를 없애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도 “현재 사회는 어릴 때부터 남자·여자색을 학습하기 쉬운 조건”이라며 “영유아제품에서부터 색에 대한 고정관념을 덜어내야 성별 고정관념 재생산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나·장한서 기자 yo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