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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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15개월 만의 한·일 외교회담, 이해 넓히는 대화 계기되길

15개월 만에 성사된 한·일 외교장관회담이 이견만 확인한 채 끝났다고 한다. 정의용 외교장관과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어제 영국 런던에서 20분간 만났으나 각자 자기 입장만 밝혔다. 모테기 외무상이 일본군 위안부·강제동원 피해자 소송에 적절한 조처를 요구하자 정 장관은 일본의 올바른 역사 인식을 촉구했다. 정 장관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의 해양환경 위협 등을 꼬집었고, 모테기 외무상은 우리 정부의 국제해양법재판소 제소 검토 등에 불만을 드러냈다. 미국의 중재로 어렵사리 이뤄진 이번 회담에서 양국이 자기주장만 되풀이하다 시간을 흘려보낸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나마 양국이 관계 회복을 다짐한 것은 작지 않은 성과다. 모테기 외무상은 회담이 끝난 뒤 “정 장관과 ‘한·일 관계를 이대로 둬선 안 된다’는 인식을 공유했다”고 했다. 정 장관도 “앞으로 다양한 현안에 관해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외교부는 “양국 장관은 한·일이 동북아 및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긴밀히 협력할 필요성에 공감하고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자는 데에 뜻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작금의 한·일 관계는 최악이다. 문재인정부 출범 후 전임 정부의 한·일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파기하고 대법원이 일본 기업의 강제동원 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이 발단이었다. 뒤이어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우리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조치가 충돌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한·일 관계가 계속 삐걱거리다 보니 한·미·일 공조에도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일이 그간의 갈등을 접고 관계 정상화를 모색하려면 공통적인 가치와 이익에 주목해야 한다. 양국의 긴밀한 협력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억지와 동북아 평화 구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한술에 배가 부를 순 없다.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이견을 줄이고 상호 이해를 넓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일본의 자세 전환이 요구된다. 부끄러운 과거를 부정하는 잘못된 역사 인식으로는 진정한 관계 회복은 어렵다. 미 국무부는 “우리는 한국과 일본이 치유와 화해를 증진하는 방식으로 역사 관련 문제에 협력하도록 오랫동안 독려해 왔다”고 밝혔다. 일본이 깊이 새겨들을 대목이다. 우리 정부도 외교문제를 국내 정치에 끌어들이는 우를 범해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