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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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벼락거지와 2030의 재테크

‘월급쟁이 후회의 삼각지대’라는 게 있다. ‘그때 그 집을 샀더라면’, ‘그때 그 주식을 샀더라면’, ‘그때 그 비트코인을 샀더라면’이라는 세 가지 후회에 갇혀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을 비행기와 선박 등의 사고와 실종이 잦은 버뮤다 삼각지대에 비유한 것이다. 윤직원 작가가 이를 빗대 그린 이 그림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공유되며 월급쟁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버뮤다 삼각지대가 ‘사고가 났다’로 끝난 반면, 이 후회의 삼각지대에서는 여전히 치열한 전투가 진행 중이다. 얼마 전 SK아이이테크놀로지 공모청약에는 81조원이라는 사상 최대 증거금이 모였고, 올해 1분기 4대 가상화폐 거래소 신규 가입자 수는 249만여명에 달했다. “A사의 B대리가 코인으로 대박이 나서 퇴사했다더라”식의 ‘카더라’통신이 전해지면 개미군단의 전의는 더욱 불타오른다.

정진수 문화체육부 기자

이런 ‘불꽃 재테크’의 시작은 2017년 이후 시작된 집값 폭등에 기인했다. 트로트 가사처럼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돌아오는 대도시 집값 폭등에 어느날 아침에 눈 떠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실질’ 자산규모가 확 쪼그라드는, 소위 ‘벼락거지’가 속출한 것이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집값이 폭등하자 그동안 전세나 월세를 살았거나, 아직 독립하지 못한 벼락거지의 아우성이 커졌다. 서울의 중소형 아파트를 사기 위해선 소득 3분위의 중산층도 16.8년 동안 월급을 고스란히 모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게 이들은 재테크 전선으로 뛰어들었다. 아니 내몰렸다. “맞벌이하면 뭐하나. 가정주부가 집 산 집이 승자다”, “내가 1년만 딱 더 모으고 집 사려고 했는데…”, “야근하며 보고서 만들 시간에 부동산 보러다니고 비트코인이나 살 걸 그랬다” 등 최근 몇년간 취재원을 만나든, 지인을 만나든 시작과 끝에는 늘 부동산과 주식, 그리고 코인이 있었다.

그중 가장 충격적인 말이 “노동의욕이 다 사라졌다”였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회사에서 인정받아 승진하고, 그 돈을 알뜰살뜰 모아서 내 집을 마련해 안정적인 노후를 대비하는 게 더 이상 불가능해진 현실에 대한 불안감과 조바심이다.

대기업 직장인도, 중소기업 직장인도, 금수저가 아닌 모든 사람들이 재테크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 근로소득만으로는 집 사기 어려워진 세상의 가장 큰 문제는 노동이 뒷전으로 밀린다는 것이다. 중·고생에게 “장래희망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건물주”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것이 이제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열심히 일해서 사회에서 인정받게 되는 직장인 ‘성공신화’는 ‘일확천금’ 앞에 고리타분한 소리가 됐다.

노동의 가치 대신 불로소득이 대접받는 시대. 누군가는 지나치게 돈을 추종하는 젊은 세대를 비난한다. 그러나 조금만 시간을 거슬러 가보자.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1억원 모으기’ 인터넷 카페들이 성행했다. 가입자들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 ‘짠돌이’ 방식으로 한푼 두푼 아껴서 돈을 모았다. 10년 새 갑자기 도박 수준의 재테크에 올인하는 ‘신인류’가 생겨난 게 아니라는 뜻이다. 지난 몇 년간, 열심히 노력해도 격차가 벌어지는 세상에 대한 절망감이 더 커졌다는 의미다.

 

정진수 문화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