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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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新금수회의록

백수의 제왕인 사자 무리에는 엄격한 규칙이 있다. 사냥에 성공하면 제일 먼저 우두머리가 먹고 뒤이어 다른 사자들이 먹는다. 하지만 우두머리는 자기 배를 한껏 채우지 않는다. 먹이의 10~20%만 먹고 나머지는 양보한다. 늑대의 대장은 사냥감을 잡으면 혼자 먹이를 다 먹어치운다. 그런 뒤 늑대 굴로 돌아가 먹이를 토해내 다른 늑대들이 먹게 한다. 동물 리더의 솔선수범 정신이다.

공자는 제자 자로가 정치에 관해 묻자 “솔선수범하고 수고를 아끼지 마라”고 말했다. 노나라의 권력자인 계강자의 같은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정치란 바로잡는 것이오. 그대가 바름으로써 모범을 보인다면 어느 누가 바르지 않을 수 있겠소?” 리더의 행동이 바르면 굳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아랫사람과 백성들이 따를 것이라는 일침이었다.

리더는 맨 앞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군대에서도 선두에 있는 정찰병을 리더로 부르지 않는다. 리더는 조직의 방향을 제시하고 이끄는 사람이다. 영어 leader는 ‘길(path)’을 뜻하는 lea와 ‘발견하는 사람(finder)’을 가리키는 der가 합쳐진 말이다. ‘길을 발견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길을 찾아 바르게 사람들을 이끌려면 리더 스스로 먼저 모범이 돼야 한다.

공직사회의 리더 격인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는 솔선수범과 거리가 멀다. 부부의 차량 압류 기록은 기네스북감이다. 교통위반 과태료 체납 등으로 차량을 압류당한 횟수가 무려 32번이다. 각 부처 리더인 장관들도 오십보백보다. 법무부의 우두머리는 수시로 사람들을 폭행한 ‘폭력 장관’이고, 문화체육관광부의 수장은 국회 회기 중에 5차례 해외 나들이를 즐긴 ‘관광 장관’이다. 나랏돈을 쌈짓돈 쓰듯 한 후보자, 아내가 도자기를 밀수한 후보자, 위장 전입과 아내의 절도 추문에 휘말린 후보자들이 용문에 오르려고 줄줄이 대기 중이다. 웬만한 범법 경력은 명함도 못 내밀 지경이다.

1908년 안국선은 일제 침탈을 앞두고 우화소설 ‘금수회의록’을 썼다. 동물이 회의를 열어 인간의 부패상을 꼬집는 내용이다. 동물보다 못한 위정자들의 품행을 보니 금수회의라도 다시 열어야 할 판이다.

배연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