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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언론중재법과 보도의 자유

그리 궁금하지 않을 개인사를 일부 공개하자면, 나는 또래에 비해 유독 소송에 휘말리는 편이었다. 내 아버지는 아들이 법조인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법 범(範)’자를 이름에 넣었다. 하지만 아들은 법조인이 되지 않았고, 그 대가(?)로 다른 이유로 법원에 자주 들락거리게 됐다.

기자가 된 이후에도 소송은 끊이질 않았다. 하는 일이 그렇다 보니 취재원으로부터 언론중재위원회 제소는 물론 소송도 받았다. 언론계 일각에서는 기자에게 소송 한 번 걸릴 때마다 ‘별을 단다’고 표현하던데, 그렇다면 나는 ‘사단장’ 이상은 될지도 모르겠다.

김범수 외교안보부 기자

마침 가장 인상 깊었던 소송전 상대도 사단장 출신인 예비역 소장이었다. 기자 초년 시절, 한 지역의 군인회 회장이 공금을 유용한다는 정보와 자료를 입수해 이를 보도했다. 기사를 쓰기 전 당사자인 예비역 소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해명도 들었다. 그는 나에게 “기사를 쓰면 큰일을 겪게 될 것이야, 음하하”라고 호기롭게 말했다. 나는 “음하하, 그렇습니까”라고 대답하고 확인된 팩트 위주로 건조하게 기사를 써냈다.

다음날, 말 그대로 “네 목을 따겠다”는 무서운 협박과 함께 문을 박차고 들어와 나에게 달려들던 ‘진격의 군인’을 볼 수 있었다. 기사가 잘못된 것은 없었다. 나는 그의 공금과 신용카드 사용내역서를 모두 입수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진격의 군인은 기사를 가짜뉴스로 몰아가며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전은 무려 3년 가까이 이어졌다. 결과는 나의 완승이었다. 공금 유용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진격의 군인이 나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이길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불복해 항소했고, 청구한 손해배상금 액수도 두배로 올려 집 한 채 가격에 근접시켰다. 물론 항소는 기각돼 원심이 확정됐다.

소송전에서 승리했지만, 결과적으로 얻는 것 하나 없는 ‘피로스의 승리’였다. 손자병법에서 지면 잃고 이겨도 얻는 게 없는 싸움을 ‘하책(下策)’이라고 했는데, 바로 그 상황이었다.

이후 기사를 쓸 때마다 조금씩 위축된 내 모습을 보게 됐다. 부당한 일이더라도 사소하거나 잡음이 많이 발생할 것 같은 일에 대해서는 왠지 모르게 피하고 싶어진다. 길고 긴 소송전을 겪으면서 나도 모르게 피로감이 쌓였기 때문이다.

언론중재법의 의도는 선할지도 모르나 지옥으로 갈 수도 있다. 물론 악의적인 의도가 다분한 가짜뉴스는 근절돼야 한다. 또한 언론계 역시 업보가 있기에 언론중재법 논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이념과 사상이 다르면 ‘이견’이 아닌 ‘가짜뉴스’로 몰리는 세태 속에서, 언론중재법의 가짜뉴스 기준은 너무나 모호하기만 하다.

보도가 사실이고, 공익적이더라도 ‘가짜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쉽다. 가짜소송으로 기자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도 쉽다. 가짜뉴스에 대한 피해를 막고자 언론중재법이 필요하다면, ‘가짜뉴스 호소인’으로부터 발생하는 가짜소송의 폐해는 어떻게 막아야 할까. 규제 이전에 다른 생각이 공존하는 게 민주주의라는 것을 일러주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김범수 외교안보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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