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영리병원' 제주 녹지국제병원 공론조사 후유증 예고

국내 첫 영리병원인 제주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 여부를 묻는 제주도민 1차 공론조사 절차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청구인과 피청구인 모두 공론조사 결과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어 후유증을 예고하고 있다.

14일 제주도 녹지국제병원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에 따르면 녹지국제병원 관련 1차 공론조사를 15일부터 유·무선 전화를 혼용하는 방식으로 도민 3000명을 대상으로 한다.
제주 서귀포시 토평동 제주헬스케어타운에 들어선 녹지국제병원.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제공

공론조사에서는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와 내국인 이용 허용, 다른 외국 자본의 도내 외국영리병원 설립 허가 여부 등 8개 항을 묻는다.

1차 공론조사 이후 의견 비율에 맞춰 200명의 도민참여단을 구성해 3주간 숙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예정대로 되면 9월 중순쯤 최종 권고안이 도출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난 9일 열린 공론조사위원회 회의에서는 영리병원 문항 반영 여부를 놓고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공론조사위원회 차원의 이메일 의견 수렴 과정은 있었으나 최종 위원회의 합의된 의결을 보지 못한 것이다.

공론조사 청구인인 의료영리화저지와 의료공공성강화를 위한 제주도민운동본부는 긴급성명을 내고 절차상 하자를 주장하며 보이콧을 예고했다. 성명은 “이번 여론조사가 공론의 장을 외면한 채 날치기로 추진하는 것에 다름이 아닌 만큼 여론조사를 즉각 중단하고 조사 문항 먼저 도민사회와 공론화해야 한다. 이런 편파적인 설문으로는 도민의 뜻에 반하는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주장했다. 성명은 “이번 설문은 명시적으로 이번 공론조사위의 핵심이 된 영리병원 허용이 제대로 설명되지 못한 근본적이고 편파적인 한계가 있다”며 “또한 청구인들이 숙의형 민주주의 조례를 통해 청구한 미래의료재단의 문제를 포함해 시민사회가 반대하는 비영리병원 우회적 진출 문제도 제대로 포함되진 못하는 등 공론화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청구인 측은 “녹지국제영리병원에 대한 여론조사의 즉각적인 중단을 요구한다”며 “도민공론화 과정 없이 강행되는 편파적인 여론조사에 대해서 심각하게 우려를 표할 수 밖에 없다. 또한 그 편파적인 여론조사 강행의 책임은 공론의 의미를 져버린 정책을 일방적으로 강행한 원희룡 도정에 있다”고 밝혔다.

강호진 상임공동대표는 “지난 9일 공론조사위 회의 논의 과정에 문제가 있었고, 이후 전자우편으로 의견을 수렴했다지만 최종적인 합의 절차도 생략됐다”며 “공론조사를 신뢰할 수 없으므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허용진 숙의형공론조사위원장은 “청구인 측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영리병원 허용 논란에 대한 편파적 한계, 우회 투자 문제 등은 1차 공론조사 설문에 담을 성격은 아니다”며 “향후 도민참여단의 숙의프로그램 진행 과정에서 양측이 충분히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만약 청구인 측 공론조사 보이콧이 현실화되면 공론조사는 무의미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피청구인인 중국 녹지그룹의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는 이미 공론조사위 결정 사항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녹지국제병원은?

영리병원은 투자개방형병원이란 이름으로 ‘동북아 의료 허브 구상’에 따라 노무현 정부 때 제주특별법으로 시작된 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본격 진행됐다. 그 핵심이 제주헬스케어타운이다. 서귀포시 토평동 153만m²에 의료복합단지를 조성, 의료관광 중심지로 만든다는 구상이었다. 중국 녹지그룹은 2012년 국토교통부 산하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와 1조130억원의 투자합의서를 체결하고 그동안 콘도·호텔 등 제반 시설에 6357억원을 투자했다. 녹지그룹의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는 778억원을 들여 헬스케어타운 내 2만8163㎡에 46병상 규모로 병원을 지었다. 피부 관리, 미용 성형, 건강검진 등을 위해 제주도를 찾는 중국인 의료관광객이 타깃이다. 이 회사는 보건복지부가 2015년 12월 ‘외국의료기관 사업계획서’를 승인하자 지난해 7월 병원을 준공, 제주도에 개설 허가를 신청했다.

하지만 원희룡 지사는 문재인 정부가 의료 영리화에 부정적인 데다 반대 단체가 공론조사를 청구하자 지방선거를 앞둔 올해 3월 이를 수용했다. 

제주=임성준 기자 jun258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