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연합(EU) 간 무역 전쟁의 전운이 짙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기 전에 EU가 미국과의 무역 협정 체결에 협력하지 않으면 유럽산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연일 위협하고 있다. EU도 미국이 관세 폭탄을 투하하면 보복 조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 참석 중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미국 경제전문 채널인 CNBC 방송과 회견에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만나 회담한 내용을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에게 “우리는 뭔가를 얻지 못한다면 조처를 해야 할 것이고, 그 조처는 미국으로 들어오는 자동차와 다른 물품들에 대한 매우 높은 관세가 될 것”이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는 선택이 없다”고 단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앞서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도 유럽연합이 중국보다 더 사업하기 어려운 대상이라고 공세를 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산 자동차에 25%의 관세 부과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무장관은 다보스에서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WSJ)에 “우리가 미국의 관세를 얻어맞으면 보복하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미국이 중국보다 유럽연합을 상대하기가 훨씬 더 어려울 것이라고 WSJ이 지적했다. 이 신문은 “미국의 유럽연합에 대한 수출 규모가 중국의 3배에 이르고, 이런 이유로 유럽연합이 미국에 보복할 수 있는 대상이 많다”고 전했다. 유럽연합은 또한 중국과 달리 미국의 동맹국이고, 유럽연합의 대외 무역 정책이 대체로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WSJ는 “미국이 유럽연합과 무역 전쟁을 하면 중국에 대적할 때와는 달리 국민적 지지가 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과 유럽연합 간 무역 전쟁이 장기화하면 양측 모두 깊은 상처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유럽 국가들은 현재 경제 성장 정체 상태에 있어 미국이 유럽산 제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면 타격을 입게 된다. 미국과 유럽 국가 간 갈등이 커지면 11월 대통령 선거전에 나서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한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고 WSJ이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유럽연합과의 무역에서 적자를 보고 있다고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미국 정부측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유럽연합에 대한 무역 적자 규모가 1626억 달러에 이르렀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관세 카드가 먹혔듯이 유럽의 동맹국에도 이것이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믿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018년 국가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EU를 포함해 외국산 철강 제품과 알루미늄 제품에 대해 각각 25%와 10% 관세를 물렸다. EU는 이에 맞서 미국산 오렌지, 청바지 등에 보복관세를 부과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에 EU가 항공기 제조사 에어버스에 불법 보조금을 지급했다며 75억 달러 규모의 EU 회원국 제품에 대한 보복관세 부과 방침을 밝혔고, 최근에는 EU 회원국이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과 같은 미국 기술기업에 디지털세를 부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프랑스가 미국 정보통신 기업에 연 매출의 3%를 디지털세로 부과하려 하자 프랑스산 와인, 치즈, 고급 핸드백 등 수입품 63종에 최고 100%의 보복관세를 물리겠다고 위협했다. 프랑스는 디지털세 부과 계획을 1년간 유예하기로 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