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극장 문을 한동안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야기는 달라졌다. 악조건에서도 공연은 계속되어야겠기에 코로나19를 피할 수 있는 온라인 상영이 무대예술의 비상구가 됐다. 게다가 어느 나라보다 고도화된 국내 인터넷 환경과 동영상 콘텐츠 감상에 최적화된 유튜브·네이버TV 등은 이 같은 공연 온라인 중계의 비옥한 토양이다. 이에 주요 예술단체는 하나둘씩 깊숙이 저장해놨던 자신들의 공연 콘텐츠를 온라인에 풀어놓거나, 아예 관객 없이 공연 실황을 온라인 생중계하고 있다. 이처럼 공연 온라인 중계가 풍성해지면서 공연 애호가 선택의 고민도 커졌다. 갑자기 쏟아진 온라인 공연 중에서도 꼭 챙겨볼 만한 작품들을 골라봤다.
◆국립극단, 남산예술센터의 랜선공연 추천작
온라인으로 연극 전막을 감상한다는 건 코로나19 사태가 아니었다면 어려운 일이다. 다른 분야와 달리 연극은 영상화된 작품 자체가 드물다. 연극계가 영상화에 투자할 만한 여유가 없는 데다 ‘배우와 같이 호흡하며 느낄 수 있는 감동’은 연극의 오랜 자부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19 방역 강화 정부 지침에 따라 한동안 폐관하게 된 국·공립 극장이 그동안 창고에 깊숙이 넣어놨던 이전 작품 영상 중 ‘베스트’를 골라 온라인에 풀어놓기 시작했다. 국립극단과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가 대표적 사례다.
남산예술센터도 화제작만 모아 유튜브에서 상영 중이다. 지난해 최고작 중 하나로 꼽히는 소설가 장강명 원작, 강량원 연출의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그믐)’이 12일까지 상영됐으며 13∼15일은 박근형 작·연출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20∼22일은 삼성 반도체 백혈병 사건과 군 의문사를 다룬 ‘7번국도(작 배해률, 연출 구자혜)’, 16∼19일에는 세월호 참사로 딸을 잃은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그녀를 말해요(공동창작 크리에이티브VaQi, 구성·연출 이경성)’, 23∼26일에는 삼국유사 웅녀 신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처의 감각(작 고연옥, 연출 김정)’, 27∼30일에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근본주의, 폭력, 혐오를 적나라하게 내보인 ‘파란나라(작·연출 김수정, 공동제작 극단 신세계)’를 공개한다.
모두 탁월한 작품인데 그중에서도 챙겨봐야 할 작품으로 김옥란 연극평론가는 ‘그믐’과 ‘록산느’를 권했다. ‘그믐’은 영화에선 맞볼 수 없는 독특한 연극 미학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거대한 달 두 개를 이어놓은 파격적인 무대가 센터 극장 구조와 잘 맞물린 상태에서 추상적이며 관념적인 원작을 배우들의 움직임으로 설득력 있게 보여줬다.
‘록산느’의 경우 국립극단이 만든 청소년 극으로서 재택수업에 지친 학생들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김 평론가는 “김태형 작가가 각색을 대단히 잘해서 다양한 인물이 나오는 원작을 인물 4명만 나오는 작품으로 모든 장면을 다시 만들어 소화했다”며 “공연 당시 청소년 관객들의 반응이 매우 좋았는데 원작 자체가 서정적인 낭만검객 시라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만큼 잘 다듬어진 시적 언어를 감상할 수 있다”고 추천했다.
여러 작품 중에서도 베스트여서 온라인 중계된 연극 중에 박근형 연출 작품이 세편이나 꼽힌 점도 이례적이다. 국립극단 ‘페스트’와 남산예술센터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그리고 경기아트센터에서 최근 무관중 온라인중계한 후 계속 공개중인 ‘브라보 엄사장’ 모두 박근형 연출 작품이다. 이중 ‘페스트’에 대해 김 평론가는 “박근형 연출이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이후 국립극단에서 공연한 첫 작품으로 주목받았는데 실제 박근형 연출만의 색깔이 잘 드러난다. 지금 코로나 감염 시대와 원작 배경이 매우 흡사에서 긴장감을 가지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국립오페라단의 베스트 온라인 상영회
여러 공연 중 극장 문턱이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 오페라 역시 코로나19 사태가 일반의 온라인 감상 기회를 만들었다. 국립오페라단이 대표작 8편을 유튜브를 통해 5월 말까지 온라인 공개한다. 모두 KBS 중계석을 통해 우수한 품질로 안방극장에 중계됐던 작품이긴 하나 방영시간대가 새벽이나 낮이어서 좀처럼 볼 기회가 없던 작품이다. 첫 작품인 ‘진주조개잡이’를 시작으로 13일부터 19일까지 ‘호프만의 이야기’에 이어 ‘리골레토(20∼26일)’, ‘보리스 고두노프(27∼5월3일)’, ‘마술피리(5월4∼10일)’, ‘라 트라비아타(5월 11∼17일), ‘코지 판 투테(5월 18∼24일), ‘안드레아 셰니에(5월 25∼31일)’ 등이 이어진다.
황장원 음악평론가는 “국립오페라단은 전반적으로 국내 최고 수준 무대를 보여주는데 이번 기회에 우리나라 오페라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라며 ‘호프만의 이야기’와 ‘보리스 고두노프’, ‘안드레아 셰니에’를 추천작으로 꼽았다. 황 평론가는 “최근 국립오페라단 작품 중에서 ‘마농’과 ‘호프만의 이야기’가 연출적 면에서 호평받았던 작품이다. 또 조금 어려운 작품이나 ‘보리스 고두노프’와 ‘안드레아 셰니에’ 역시 이탈리아 연출가 스테파노 포다가 ‘역대급 무대를 만들었다’고 호응이 좋았던 작품들”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2017년 국내 초연이었던 ‘보리스 고두노프’는 러시아 오페라를 대표하는 명작으로 당분간 국내에서 보기 어려운 작품이다. 연출과 음악 연주, 무대 모두 훌륭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황 평론가는 “세계 유명 오페라단이 실황 영상을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이를 찾아보면 우리나라 무대와 비교할 기회”라며 “바이에른과 빈 국립오페라 극장 등이 오페라 본고장 연출의 참모습을 보여주는데 초심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나 빈국립오페라단 공연을 찾아보고, 조금 더 즐기고 싶으면 독일어권 오페라 추세를 이끄는 바이에른오페라 극장의 연출을 보면 흥미를 느낄 것”이라고 소개했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