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도 엔터테인먼트가 있었다? [조인선의 K트렌드]

가야금을 연주하는 기생. 국립중앙박물관

하이브, SM, YG, JYP 등 연예인 사관학교로도 불리는 엔터테인먼트 분야가 21세기 유망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아니, 이미 부상해 중요한 자리를 꿰찬 지 오래다. 엔터테인먼트 분야와 연계한 다양한 한류 관련 문화사업들도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엔터테인먼트가 조선 시대부터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것도 아주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조선 시대 연예인은 기생(妓生), 특히 이중 노래·춤·그림·글씨·시문 등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기생인 ‘예기(藝妓)’가 이에 해당한다. 기생은 천민의 신분이긴 했지만, 소속에 따라 관기와 민기로 나뉘었다. 특히 관기는 궁중과 지방관에 소속돼 활동해 현재의 정부 산하 예술 공무원과 비슷한 위치였다.

 

하지만 1894년 갑오개혁에 의해 신분제도가 철폐되면서 기생 사회 또한 근대화 과정을 거쳤다. 기생은 전·근대 가무 계승자이자 동시에 쏟아지는 신문물에 포함된 새로운 가무를 재해석해 전통과 신문물을 넘나들며 문화를 리드하는 예술계 트렌드 세터로 떠올랐다.

 

조선 중기까지는 기생이 되기 위해서 ‘교방’이라는 기생을 관장하고 교육하는 기관을 졸업해야 했다. 일제강점기 이후부터는 ‘권번’에 속해야 기생이 될 수 있었다.

 

일제는 1908년 ‘기생단속령’을 발령, ‘기생조합’에 가입한 기생만 가무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생조합은 권번을 통해 기생을 양성했다. 권번은 기생 교육과 더불어 모든 교육과정을 수료한 기생들이 요정에 나가는 것을 지휘하고 감독했다. 권번에서는 기생 지망생들을 대상으로 일본어, 조선어, 산술, 서화 등을 가르쳤다. 지금으로 치면 ‘기생조합’은 엔터테인먼트, ‘권번’은 연예인 사관학교에 해당한다. 

 

권번은 당시 교육 기관 중 전통 예술을 계승한 유일한 곳으로, 엄격한 교육이 이뤄졌다. 3년 교육 동안 성적이 부진하거나 행실이 단정하지 못하면 퇴학을 당했다. 졸업시험을 통과해야 기예증을 받고 기생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이때만 해도 기생은 예와 기품을 지키며 악·가·무(樂·歌·舞)에 능한 종합 예술인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종합 예술인 이미지를 일제는 민족문화말살정책 아래 권번을 강압적으로 폐지하고, ‘공창제’ 등을 통해 일본 게이샤 문화를 유입시켜 기생을 매춘부와 하나로 묶어 취급했다.

 

3·1 운동 당시 종로에서 만세 시위하는 기생들. 한국학중앙연구원

게다가 기생을 일본식 오리엔탈리즘에 근거한 시선으로 봉건적이고 정체된 조선 풍속의 하나이며 수동적인 성적 대상물로 표상했다. 당시 화보와 엽서에서 기생들은 조선 전통 복장을 한 소녀 모습으로 나오는데, 이는 점령국 남성이 식민지 여성을 도구화하는 전형적인 제국주의 정책의 일환이었다.

 

이러한 탄압과 왜곡에도 불구하고 기생은 전대 가무의 계승자이자 당대 최고 여류 예술가로 시대적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더불어 3·1 운동 등 항일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기생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다. 아픈 역사의 희생자로 고통받는 기생과 그들의 모임인 기생조합, 그들을 가르친 권번의 의미를 바로 잡아야 한다. 현재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통 예술의 한 뿌리임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 불고 있는 한류의 발원지인 연예인과 엔터테인먼트, 연예인 사관학교 등의 시초로 대중에게 알려야 할 때다.

 

전통예술 디렉터 조인선

 

●전통예술 디렉터 조인선

 

한국예술종합학교 아쟁 전공. 국내 최초 전통예술플랫폼 (주)모던한(Modern 韓)을 운영하고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 편집위원과 한국관광공사 코리아 유니크베뉴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케이콘 2016 프랑스 전시 기획, 한국-인도 수교 50주년 기념 공연 기획 등 다양한 한국 전통예술 우수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 글로벌 시장에 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