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첫 기자회견서 “여성 존중” 강조… 女앵커와 마주앉아 인터뷰도

‘달라졌다’ 변화 강조했지만 ‘女억압’ 회귀 조짐
부르카 가격 치솟고, 일부지역 여성 외출 금지
17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 대변인인 자비훌라 무자히드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카불 AP=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첫 기자회견을 열고 얼굴을 드러냈다. 탈레반은 회견에서 여성 억압과 이슬람법에 따른 엄격한 사회 통제를 바꾸겠다며 ‘우리는 달라졌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

 

17일(현지시간) AP·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탈레반 대변인인 자비훌라 무자히드는 이날 수도 카불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프간 전쟁은 종료됐다고 선언하며 변화와 관용을 강조했다. 그는 사면령이 선포된 만큼 이전 정부나 외국 군대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복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이날 탈레반은 국제사회의 비판을 의식한 듯 여성의 권리를 존중하겠다고 밝혔다. 무자히드 대변인은 “우리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며 “샤리아법에 따라 여성이 일하도록 허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성은 사회의 중요한 요소이며 우리는 그들을 존경한다”고도 했다.

 

샤리아는 이슬람 율법으로, 탈레반이 과거 아프간을 통치하던 5년 동안 이를 엄격하게 적용해 여성들을 교육과 노동에서 제외했을 뿐만 아니라 불륜을 저지른 여성을 돌로 때려죽이는 것을 허용하는 등 가혹한 형벌을 가했다. 

 

탈레반은 한 TV뉴스채널에서 여성 앵커와 나란히 앉아 인터뷰하기도 했는데, 이 또한 과거와 달라진 태도를 보여 극단적인 이슬람 근본주의의 이미지를 바꾸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부르카 입은 여성. 연합뉴스

하지만 아프간 곳곳에는 탈레반이 2001년 미국 침공 이전 집권 당시로 회귀하려는 징후가 포착돼 악명 높았던 집권 시절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하자마자 거리에는 여성이 사라지고, 여성이 등장한 외벽 광고사진은 페인트로 지워졌다. 또 탈레반이 여성들에게 외출할 때 온몸을 가리는 부르카를 착용하도록 강요하면서 부르카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아울러 아프간 일부 지방의 여성들은 남성 친척의 동행 없이 집을 떠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고, 카불 대학교에서는 여학생들이 남자 보호자와 동행하지 않는 한 기숙사 방을 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등 여성 억압이 재현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탈레반이 아프간 국영TV의 유명 앵커인 카디야 아민을 비롯해 여성 직원들을 무기한 정직시켰다고 보도했다. 아민은 “나는 기자인데 일할 수 없게 됐다. 다음 세대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며 우리가 20년간 이룬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라며 “탈레반은 탈레반이다. 그들은 변하지 않았다”고 눈물 흘리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