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하고 나면 땀범벅인데…칸막이도 없는 수돗가에서 씻어"

열악한 고려대 미화원 휴게실 가보니…고대·연대 학생들 지지 이어져
지난 1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본관 창문에 학내 청소·주차·경비노동자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피켓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무서워서 여기서 어떻게 씻어요? 이게 제 첫마디였어요."

폭우가 쏟아진 13일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 법학관 구관의 지하 휴게실에서 만난 청소노동자 이모(57) 씨가 샤워실이라고 데려간 곳은 어설픈 칸막이 하나가 서 있을 뿐 사방이 뚫려있었다. 고된 일을 마친 뒤 마음 편히 씻을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이곳은 원래 미화원들이 식사 후 설거지를 하는 곳이었다.

"지나가다가 누가 볼까 봐 무서운 마음이 들죠. 그렇다고 안 씻을 수도 없어요. 한 타임 청소하고 나면 속옷까지 싹 다 젖거든요."

이씨는 천장 배관에 걸려있는 수건과 옷가지를 한쪽으로 치우며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현장에서 만난 노동자들은 이렇게 열악한 샤워 공간조차도 없는 건물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이 대학교 내 건물 68곳 중 샤워실이 갖춰진 건물은 신법학관, 경영본관, 교양관 등을 포함해 모두 6곳뿐이다.

법학관 신관 지하 주차장 한쪽에 마련된 샤워실에는 샤워부스와 탈의용 사물함, 화장대 등이 갖춰져 있으나 비가 올 때마다 물이 새 바닥에 종이박스를 깔아둬야 한다고 했다.

환기가 안 되는 지하실에 물이 고여 곰팡이가 곳곳에 슬어 있었다.

고려대에서 10년 넘게 일했다는 법학신관 미화원 A씨는 "샤워실이라고 갖춰만 놨지 여기서 실제로 못 씻는다"며 "이 옆에는 오수 처리하는 시설이 붙어있는데 곰팡내까지 겹치면 악취가 심해 쓸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서재순 고려대 분회장은 "휴게시설 개선 요청에도 여전히 지하에 위치한 곳이 많아 문제"라며 "특히 주차장에 위치한 경우 환기가 어려워 휴게실 안으로 매연이 고스란히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지난 1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본관 앞에서 열린 고려대 청소·주차·경비노동자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학생 기자회견에서 학생과 노동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고려대분회는 이달 6일부터 학교 본관을 점거하고 시급 440원 인상과 샤워실 설치, 휴게 공간 개선을 요구하는 철야 농성을 벌이고 있다.

분회장을 비롯한 집행부가 점거 농성을 이어가고, 근무 중인 조합원들은 시급을 받지 않는 휴게시간인 오전 9∼10시, 낮 12시∼오후 1시 두 차례 집회에 참여한다.

이들과 연대하려는 학생들도 본관에 돗자리를 깔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국사학과 재학생 오혜영(23) 씨는 "학교 실태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며 "일부 학생들 사이에서도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반응이 조금씩 나오는 것 같은데 나처럼 뜻을 함께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나와 있다"고 말했다.

'고려대 청소·주차·경비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한 학생대책위원회'는 13일 학교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려대는 묵묵부답하며 숨지 말고 노동자들의 요구에 성실히 응하라"고 촉구했다.

연세대학교에서도 올해 4월부터 임금인상과 샤워실 설치를 요구하는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집회가 계속되고 있다.

연세대 역시 건물 45개 가운데 샤워실이 있는 곳은 4곳에 불과하다.

이런 가운데 지난 5월에는 연세대 재학생 3명이 집회 소음 때문에 학습권을 침해당했다며 노조 집행부를 업무방해 등 혐의로 고소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도 제기해 논란이 됐다.

이에 연세대 졸업생 2천373명은 공동 입장문을 내고 "청소노동자분들의 투쟁에 지지를 보낸다"며 "우리가 쾌적한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기여한 사람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면 그렇게 만든 일그러진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