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10대 자살률 2035년까지 절반으로"…위기징후 AI로 포착

청소년 자살예방 범정부 대책, 사회정서교육 확대·자살보도 규제 강화 추진
교원단체 "입시경쟁 완화 등 근본과제 빠진 보여주기식 대책"

청소년 자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교육부, 보건복지부, 성평등가족부, 행정안전부, 경찰청 등 관계부처가 손을 잡았다.

 

교육부는 15개 부처가 참여한 '10대 청소년 자살 예방 범정부 추진 대책'을 9일 발표했다.

 

지난 2월 19일 서울한강 북단 하류 ‘SOS생명의전화’ 모습. 유희태 기자

이번 대책은 지난 5월 6일 국무회의에서 논의된 '9대 분야별 자살 예방 대책'의 일환으로 수립됐다.

 

청소년에 대한 사회정서교육 강화, 청소년의 위기 징후 발견에 인공지능(AI) 활용, 상담·치료를 지원하는 청소년 전용 병동 도입 등 다양한 방안이 담겼다.

 

그러나 지엽적인 대책만 열거하고 입시 경쟁 완화 등 근본적 처방이 빠지면서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교원단체를 중심으로 제기된다.

 

◇ 작년 10대 자살 396명, 9년새 45%↑…정신과 진료 청소년은 43만명

 

10대의 사망 원인에서 자살은 오래전부터 1위를 차지했지만, 문제의 심각성은 갈수록 커졌다.

 

학업 스트레스, 가정 문제 등 각종 문제로 힘들어하다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청소년이 계속 늘고 있는 것이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작년 10대 자살자는 396명(잠정치)으로 2024년 372명에 비해 24명(6.5%) 증가하면서 역대 최다로 파악됐다.

 

2016년(273명)과 비교하면 9년 만에 123명(45.1%) 급증했다.

 

지난해 10대 자살자를 성별로 보면 여성이 52.3%로 남성(47.7%)보다 많았고 월별로 보면 상반기가 52.5%로 과반을 차지했다.

 

심민철 교육부 학생건강안전정책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여성 청소년의 자살 증가에 대해 "최근 여학생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인터넷에 대한 과의존이 많고 (남학생보다) 사회적 민감도가 높다는 정신건강의학계의 의견을 들은 바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한 초·중·고교 학생은 243명으로 2024년(221명)을 넘어 사상 최대치를 또 기록했다.

 

자살한 초·중·고생은 대부분 10대다.

 

청소년들의 자살에는 정신적 문제가 크게 도사리고 있다.

 

정부가 경찰조서에 기반해 2024년 청소년 자살자의 동기를 분석한 결과 '정신과적·정신적 문제'가 55.6%로 가장 많았고 '관계 문제(가정·남녀)'가 13.2%로 나타났다.

 

국민건강보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정신건강 문제로 병원을 방문한 청소년은 43만1천명으로 021년 27만4천명 대비 57.3% 급증했다.

 

특히 자살 위험도가 높은 우울·불안·양극성장애·조현병 등 중등도 이상 정신과 진료를 받은 청소년은 지난해 13만2천명으로 추정됐다.

 

2021년 8만6천명과 비교하면 4년 사이 53.5% 늘었다.

 

정부는 "청소년 자살은 강한 충동성에 기인한다는 특징이 있다"며 "진로 고민 및 학업 스트레스, 가정·학교에서의 갈등, 온라인 유해 정보 및 자살 보도 등 복합적 원인에 영향을 받는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자살자 대다수는 사전에 고위험군에 분류되지 않는데 청소년 역시 타 연령대와 마찬가지로 자살자 구조 신호에 대한 감지 비율이 낮다"고 덧붙였다.

 

2018년 중앙심리부검센터에 따르면 자살자의 92%가 언어, 행동 등으로 경고 신호를 보내지만, 유가족의 21%만 이를 감지한 것으로 분석됐다.

 

10대 청소년들도 진급, 진학 등 새로운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크게 받지만, 가족 등이 그 심각성을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

 

이에 따라 청소년의 심리 상태에 대한 가족, 학교 등 주변의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다.

 

◇ 정부 "청소년 10만명당 자살, 2035년엔 4.2명 이하" 목표 제시

 

이날 발표된 대책은 '예방-감지-개입-회복-기반 조성'의 단계별 5개 전략과 15개 과제로 구성됐다.

 

정부는 이를 통해 2024년 기준 10만 명당 8명인 청소년 자살률을 2030년 6.5명(2020년 자살률), 2035년 4.2명(2015년 자살률) 이하 수준까지 단계적으로 낮추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10대 자살률을 10년 후에는 약 절반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얘기다.

 

우선 정부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마음건강 교육을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

 

현재 초·중·고에서 범교과 6차시로 운영 중인 사회정서교육을 17차시까지 확대하고 체험 및 활동 중심의 체육·예술교육으로 청소년의 자존감과 정서 회복을 지원할 계획이다.

 

고위기 청소년의 조기 발견에도 공을 들인다.

 

정부는 '마음 시피알(CPR) 교육'(가칭) 등을 통한 생명지킴이 교원·청소년 양성을 확대함으로써 학교 내 위기 학생의 조기 발견 체계를 고도화하기로 했다.

 

현재 '자살예방법'은 경찰과 소방에서 취득한 자살 시도자 정보의 공유 대상을 자살예방센터와 정신건강복지센터로 제한하는데 앞으로 시도교육청까지 관련 정보가 공유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시도교육청이 10대 자살 시도자에 대한 정보를 빠르게 입수하고 학교에서도 적기 대응에 유리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또 성평등가족부는 AI를 활용한 위기징후 발굴시스템을 연말까지 구축할 예정이다.

 

상담사들이 그동안 온라인에서 청소년의 자살 관련 글 등을 검색했지만 앞으로 AI로 빠르게 대응하는 방식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아울러 정부는 모든 학교에 전문상담인력을 배치하는 한편 위기 청소년의 상담·치료를 지원하는 전용병동·병상을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학생 마음건강을 지원하는 교육·행정기관의 예산도 확대된다.

 

올해 학생마음건강지원비 예산은 보통교부금 총액의 0.25% 수준인데 2030년에는 1% 수준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다.

 

정부는 청소년 자살 보도에 대한 규제 강화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선영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관은 "아직 법령 개정 수준을 어떻게 할지 구체화한 것은 아니지만 발의된 법안 중심으로 청소년 보도에 대해서는 지금 권고 수준이 아니라 제한할 수 있는지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예컨대 청소년 자살에 관한 보도에서 자살 수단이나 장소, 연령 등을 제한하는 방향을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청소년 자살 대책은 교육청이나 학교 중심으로 추진되면서 한계가 있었지만, 이번 대책은 여러 부처가 힘을 모았다는 점에서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고 교육부는 강조했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브리핑에서 "모든 부처가 함께 마음을 모아서 청소년 자살률 확실히 떨어뜨리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교총 "근본원인 고민 부족", 전교조 "보여주기식 정책" 비판

 

교원단체들은 정부 대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현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대책이 소중한 생명을 함께 지키는 계기가 되길 바라고 환영한다면서도 "다만 학생들이 왜 행복하지 않은지, 그리고 마음건강 위기 학생이 급증하게 된 근본 원인에 대한 고민과 대책이 다소 부족해 아쉽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금 학교는 안전사고 문제와 각종 민원으로 야외활동이 극단적으로 위축된 상황인데 이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이 자살예방대책의 일환으로 제시한 것 자체가 학교 현장과의 소통이 부족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정부의 청소년 자살 예방 대책에 대한 논평을 내고 "청소년 자살을 줄이겠다고 하면서도 청소년을 극한 경쟁으로 내모는 교육 현실을 그대로 둔 채 상담과 치료, 위기학생 관리 대책을 확대하는 데 그쳤다"고 밝혔다.

 

또 "교육부와 정부는 더 이상 보여주기식 대책으로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며 "청소년 자살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려면 입시 경쟁 완화, 학교 공동체 회복, 정서위기 학생 지원 체계 구축이라는 근본 과제에 국가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