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영화는 말 그대로 ‘임상수표 영화’다. 특유의 냉소와 쿨함으로 80년대의 칙칙한 분위기를 걷어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오히려 참을 수 없을 만큼 영화는 가볍다.
영화는 소설의 큰 틀을 그대로 차용했다. 광주항쟁 이후 도피중인 운동권 핵심 오현우(지진희)는 산골로 피신한다. 시골 학교 미술교사 윤희(염정아)는 그를 숨겨주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동료가 붙잡혔다는 소식에 서울로 상경한 현우는 곧 검거되고 17년 옥살이를 한다. 시간이 흘러 출소한 현우는 윤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과거 둘이 함께 보낸 시골에 찾아가 아련한 추억에 젖는다.
그런데 영화의 분위기는 소설과 확연히 다르다. 무엇보다 해석의 가벼움이 문제다. 원작은 80년대라는 한국사회 격변기를 관통하며 시대의 아픔을 개인의 삶으로 받아들인 인간의 모습을 치열하게 그려냈다. 하지만 멜로 중심 스토리로 요약된 영화는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번 현우 어머니의 모습이나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현우의 껄렁껄렁한 모습은 영 어색하다. 당시 운동권에 대한 묘사도 가미가제식 결사대 아니면 오렌지족 같은 철부지 뿐이다. 도무지 왜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는 대규모 학생 데모 신이나 학출 노동자 분신 장면은 전혀 감정이입이 안 될 정도로 생뚱맞다. 가장 치열했던 80년대를 배경으로 했지만 시대는 간데없고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들만 나부낀다.
그러다 보니 현우와 윤희의 오랜 사랑도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사랑보다 신념을 택한 현우의 결정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17년을 생이별하게 만든 ‘불의의 80년대’가 거세됐기 때문이다. 사랑마저 주저됐던 시절, 혼자만 행복하면 미안했던 시절의 아련한 사랑 얘기를 다룬다면서 정작 시대의 모습이 냉소적으로 그려졌으니 그 사랑이 그다지 숭고해 보이지 않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가장 괴리감이 큰 캐릭터는 역시 현우다. 17년이나 수감생활을 한 사람치고는 현실에 빠르게 적응한다(극중에선 1996년이 현재로 설정된다). 장기수들은 출소 후 제대로 걷지 못한다고 한다. 바닥이 평평한 감방에만 있다보니 울퉁불퉁한 길거리에 적응하기 힘든 것. 폐쇄 공포증도 일상적이다. 하지만 무심한 현우의 모습 어디에서도 장기수의 잔상을 볼 수 없다. 마치 잠깐 어디 다녀온 사람의 느낌밖에 없다. 불과 2년밖에 안 되는 군대를 갔다와도 세상이 달라 보이는데 말이다.
감방 안의 현우 모습도 그렇다. 계구를 쓰고 교도관에게 애원하는 모습에서는 법정에서 사회주의자임을 당당히 밝힌 현우를 찾아 볼 수 없다. 현우의 존재감이 약해진 것은 지진희의 연기력 문제가 아니라 캐릭터 설정의 문제다. 신념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인물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 냉소적이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임상수식 냉소가 아무런 성취를 이루지 못한다는 점. 그는 자신만의 스타일에 매몰돼 원작의 시대성을 방기했다. 따라서 시대적 아픔도, 그 속의 멜로도 모두 어정쩡해 버렸다. 색다른 멜로를 보여주려면 특유의 냉소와 쿨함은 절제했어야 한다. 이 영화는 ‘그때 그 사람들’이 아니다.
물론 원작을 그대로 옮길 필요는 없다. 임상수 감독은 80년대를 관통한 캐릭터의 전형성을 탈피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는 “뻔한 운동권 이야기지만 고리타분하지 않게 만들려고 노력했다”며 “진지하지만 재미있는 영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재미있게 만드는 것과 가벼운 것은 별개의 문제다.
세계일보 인터넷뉴스부 이성대 기자 karisna@segye.com
제보 및 보도자료 제공 bodo@segye.com, 팀블로그 http://in.segye.com/bod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