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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 신작소설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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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기억찾아 과거로의 시간여행
◇이탈리아 소설가 움베르토 에코가 방대한 문학 텍스트를 정교하게 엮은 ‘삽화 소설’을 내놓았다. 소설에 삽입된 문학작품은 에코 자신의 추억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애서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작가 움베르토 에코(76)의 대표작 ‘장미의 이름’(1980)은 숀 코너리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돼 인기를 끌었다.

소설가이자 기호학자, 철학자, 미학자인 에코의 풍부한 교양과 학식은 거부감 없이 대중에게 환영받는다. 그의 초인적인 지성이 현학이 아닌 소설의 구성을 흠 없이 가꾸는 데 쓰이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소설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이세욱 옮김, 열린책들)에서도 고전과 현대문학을 아우르는 그의 방대한 지식은 넘쳐 흐른다. 에코의 재능은 깔끔하고 묵직한 문장과 결합돼 유럽횡단 여행 같은 장편소설을 낳았다.

‘…신비한 불꽃’은 특이한 성장소설이다. 자아를 찾는 주인공은 소년이 아니라 겪을 것 다 겪은 환갑 노인이다. 심장발작으로 인한 혼수상태에서 회복된 고서점 주인 잠바티스타 보도니는 기억을 잃었다. 후천적으로 습득한 지식은 온전하지만, 개인적이고 내밀한 추억은 깨끗이 지워졌다. 단테, 발레리, 카프카, 랭보, 발자크, 프루스트 등 대문호가 남긴 명구(名句)는 또렷한데, 자신의 아내나 손자에 관해서는 전혀 아는 게 없다. 그가 구사하는 감정 표현도 전부 책에 씌어 있는 클리셰(상투어)뿐이다.

“나는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말은 한마디도 할 수가 없어요. 감정은 없고, 판에 박은 말들만 기억하고 있거든요.”(35쪽)

보도니는 부모의 결혼사진, 어릴 적 열광했던 미키마우스 만화에서 ‘신비한 불꽃’을 느끼고 기억 복원의 조짐을 발견한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찾기 위해 유년 시절을 보냈던 시골집으로 떠난다. 다락방에는 그의 정서를 형성한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 판화, 만화, 동화, 통속소설, 고전소설, 파시스트 선전물 등은 조국 이탈리아의 근·현대사를 펼쳐보인다. 이중 가슴 속에 불꽃을 점화하는 소품은 살아있는 올빼미, 유치한 만화책과 무솔리니 시대의 서적 등이다. 그는 지극히 개인적인 물건을 매개로 첫사랑과 빨치산 이야기가 깃든 자신의 과거를 되찾는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보도니는 천재인 동시에 백치다. 그의 ‘잃어버린 시간’ 찾기는 독방에 틀어박혀 기억을 더듬은 소설가 프루스트처럼 강박적이지 않다. 에코는 백치의 천진함을 빌려 행간을 유머로 꾸민다. 퇴원한 보도니가 아내와 처음으로 사랑을 나눌 때, 그는 사춘기 소년처럼 환호한다. 들떠 있는 보도니를 보고, 아내는 말한다.

“원 세상에.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네. 예순 살 먹은 남편의 동정을 빼앗다니.”(140쪽)

아름다운 여비서 시빌라와 자신의 관계를 추측하는 장면도 웃음을 유발한다. 내연관계였는지 단순한 동료 사이였는지 가늠을 못하는 보도니는 시빌라가 요부로 보이기도 하고, 천사로 보이기도 한다.

소설은 인터넷 시대의 ‘정보 잡식성’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힌다. 보도니의 백과사전적 지식은 기억을 찾는 도구인 동시에 그를 외부와 격리한 장애물이다. 에코는 일전에 “인터넷은 모든 정보를 주관하는 신”이라면서도 “인터넷을 통해서만 정보를 접하면 남들과는 전혀 다른, 고립된 나만의 백과사전을 만드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적이 있다.

‘…신비한 불꽃’은 2004년 출간됐을 때, 혹자는 개인적인 요소가 짙어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고 평했다. 에코는 자신의 소설을 낯설어 하는 이들의 손을 호기롭게 잡아끈다.

“우리는 트로이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호메로스를 통해 마치 트로이에 있는 듯한 느낌을 갖습니다. 호메로스도 가능한데 나라고 안 될까요?”

심재천 기자 jaysh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