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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태는 누구? MB정권 탄생 '일등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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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수 黨대변인 출신
‘이명박 정권 탄생 일등공신’, ‘최장수 스타 대변인’, ‘폭탄주 원조’ ….

한나라당 박희태 신임대표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들이다.

박 대표는 검사 출신이다. 1961년 13회 사법고시 합격해 검찰 내 요직을 두루 거친 뒤 1988년 민정당 국회의원(13대)으로 정계에 발을 들였다. 그는 정치 초년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승승장구했다. 내리 5선을 하면서 당 대변인(민정당·민자당)과 원내총무(신한국당·한나라당), 당 대표, 국회부의장 등을 역임한 한나라당의 대표적인 ‘적자(嫡子)’다. 그가 이번 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뿌리론’으로 톡톡히 재미를 본 데는 이런 이력이 한몫 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1988년부터 4년3개월에 걸쳐 당 대변인을 맡으면서 품격 있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논평으로 명성을 날렸다. 다만 1993년 김영삼 정부의 초대 법무부 장관에 임명됐으나 딸의 이중국적·특례입학 문제로 열흘 만에 낙마한 것은 오점으로 남았다.

정가에선 박 대표의 강점으로 여야를 넘나드는 원만한 인간관계와 온화한 성품을 꼽는다. 이 때문에 지난해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이명박, 박근혜 후보 양쪽 모두로부터 ‘러브콜’을 받기도 했다. 박 대표는 고심 끝에 이 후보 손을 잡았는데, “다른 뜻이 있어서라기보다 대선의 시대정신이 경제 살리기여서 이명박 후보를 택하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경선 이후에도 박근혜 전 대표 측을 다독이며 당 분열을 막는 데 힘썼다.

또 당 중진과 원 내외 당협위원장들을 이 후보쪽으로 끌어오고, 이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이재오 전 최고위원 등과 함께 ‘6인회의’를 꾸려 선거전략 수립과 인재 영입 등을 지휘하는 등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의 일등공신이 됐다.

이 같은 공적에 힘입어 올해 6선 고지도 무난히 밟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갈이’역풍을 맞아 공천에서 탈락했다. 정치인생 중 최대 위기를 맞은 것이다. 그러나 당내 화합이 최우선 해결과제가 되면서 그를 찾는 목소리가 높았고, 결국 거대 집권여당의 대표로 ‘컴백’하게 됐다.

‘폭탄주 원조’란 별칭은 1980년대 초 춘천지검장 시절 지역 기관장 모임에서 비롯됐다. 박 대표는 언젠가 “당시 위스키를 글라스로 돌리는 군 음주문화에 지친 한 참석자가 ‘이렇게 마셔 보자’고 제안한 게 폭탄주였다”고 유래를 소개한 바 있다.

이강은 기자 ke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