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먼곳에’는 전쟁 영화인가 한 여성의 사랑 이야긴가.
순이의 개인사와 가족사, 1970년대 초반의 사회사, 베트남전과 연계된 국가사까지 여러 코드가 섞여 있다. 순이의 험난한 오디세이를 뼈대 삼고 다양한 이야기로 살을 붙였다. 베트남전이나 70년대를 생각한 건 대한민국 20세기의 단면을 정확히 묘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 세대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현재 우리 삶의 모습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처음으로 여배우가 비중 있게 등장한다. 그것도 전쟁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다.
여성적 관점에서 전쟁을 바라보고 싶었다. 대부분의 전쟁영화는 남성의 시각을 깔고 있다. 특히 베트남전은 미국의 영웅주의가 두드러진다. 남자들의 이야기인 역사(History)를 여성의 역사인 허스토리(Her story)로 재구성하고 싶었다. 남성 중심 시각을 해체하고 모순을 폭로하는 것이다. 여성의 눈으로 볼 때는 그놈이 그놈이다. 한국군이나 미군, 베트콩 전부 똑같다.
기존 베트남전을 다룬 작품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알다시피 베트남전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부딪친 마지막 이념전쟁이었다. 우리 전쟁도 아닌데 끼어들었고 우리는 아직도 고통받고 있다. 순이가 마지막에 “너 지금 뭐 하고 있느냐”며 상길이 따귀를 때린다. 냉전이 언제 끝났는데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느냐는 의미를 넣고 싶었다.
엔딩신이 인상적이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난 순이와 상길은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말이 필요 없는 응축된 장면이다. 이 엔딩으로 순이와 상길의 모든 감정이 표현된다. 자신도 싫고 순이도 싫어 전쟁터로 피한 상길은 온갖 역경을 이기며 기어이 자신을 찾아온 아내 순이를 보자마자 무너져 내린다. 바로 이 장면을 위해 순이는 그동안 한 단계 한 단계 전진한 것이다. 남성성, 이데올로기, 전쟁 등이 여성의 진정성 앞에서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표현하고 싶었다.
순이는 주체적인 여성인가? 시대의 희생자는 아닌지
순이는 전쟁의 한복판을 통과하면서 평범한 시골 아낙에서 주체적인 여성으로 탈바꿈한다. 순이는 남편 상길에게만 약했을 뿐 모든 남성에게 당당하다. 그녀의 모든 행동은 외부의 강요가 아닌 자신의 선택이다. 남편을 찾으러 베트남에 떠밀려 간 게 아니다. 따라서 순이는 사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게 아니다. 오히려 모든 남성의 구원자다. 바리데기 같다.
70년대 감수성이 2000년대 관객에게 어필할까.
전쟁영화라기에 그냥 때려부수는 블록버스터인 줄 알고 왔다가 이런저런 걸 생각하게 하니까 골치 아파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올드한 감독이라 그렇다. 난 스타일리시한 영상과 때깔 좋은 편집보다 서사나 드라마에 치중한다. 흔히 스토리가 빈약하면 서사가 없다고 비판하면서 막상 진중한 이야기가 나오면 또 주류 관객층 취향에 맞겠느냐고 우려한다. 난 내용이 풍부한 상업영화를 만들고 싶고 ‘님은 먼곳에’도 그런 영화다.
>> 님은 먼곳에 ★★★
이준익 감독의 작품답게 ‘님은 먼곳에’는 질박하면서도 따뜻하다. 특유의 낙관주의로 인물과 사회를 바라본다. 가장 속물적인 인물인 정만(정진영)마저도 연민이 느껴진다. 원톱 주연을 맡은 수애도 제 몫을 훌륭히 소화했다. 순박하고 가녀린 순이에서 강인한 써니로 변해가는 모습을 섬세한 감정 변화와 눈물 연기로 잘 표현했다.
김추자의 ‘님은 먼곳에’를 비롯해 ‘늦기 전에’ ‘대니보이’ 등 당시의 노래가 이야기를 관통하며 인물의 심리를 효과적으로 드러내준다. 한마디로 ‘님은 먼곳에’는 깊이 있는 스토리와 배우들의 좋은 연기, 리얼리티와 스펙터클이 살아있는 전쟁 신 등이 비교적 무난하게 어우러진 작품이다.
그럼에도 마냥 몰입하는 게 쉽지 않다. 우선 밋밋한 복고 드라마라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서사 중심 영화에서 인물의 갈등이나 인과관계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더구나 유장하게 흐르는 드라마는 집요할 정도로 일정한 톤을 유지한다. 감독은 시대를 재해석하기보다 재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40여년 전 과거 이야기를 문어체 형식으로 풀어놓으니 낯선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순이의 순애보에 과연 얼마나 동의할지도 미지수다.
‘님은 먼곳에’는 감독이 밝혔듯이 여성이 바라본 전쟁영화다. 여성의 눈에 비친 전쟁은 그저 남성들의 다툼일 뿐이다. 그런데 이런 시각은 전쟁의 원인과 가해자의 책임 문제를 희석시킨다. 베트남을 침공한 미군이나 그에 맞서 조국을 지키려는 베트콩이나 돈 벌러간 한국군이 모두 똑같다는 시각은 위험하다.
코미디 ‘황산벌’에서 “전쟁은 정통성 없는 세력이 정통성을 세우려고 하는 것”이라고 날카롭게 분석했던 이준익 감독이 이번에는 아예 전쟁의 본질에 대해 눈을 감은 분위기다. 여성의 여정을 통해 당대를 읽어내려는 의도 역시 잘 드러나지 않는다. 따라서 “한국인의 눈으로 베트남전을 바라보고 싶었다”는 감독의 바람도 흐지부지됐다. 24일 개봉.
이성대 기자 karisna@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