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깨어 있는 사람들. 바로 동대문 상인들이다. 전국 각지에서 의류와 침구류 등을 도매로 사기 위해 동대문 시장으로 몰려든다. 그런 동대문 시장이 변화를 꿈꾸고 있다. 디자인 플라자&파크(DDP) 조성 계획으로 서울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첨병을 자임하고 나섰다. 물류·디자인이 복합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동대문 일대가 거듭나고 있음이다.
사실 동대문은 진작 본래 이름에 걸맞는 ‘명예’를 되찾았어야 했다. 1392년 개국한 조선은 유교를 건국이념으로 삼았다.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다섯 가지 덕, 오상(五常)이 기본 정신이다. 이에 따라 사방에 흥인지문(興仁之門)· 돈의문· 숭례문· 숙청문(숙지문의 변용)이, 중심에는 보신각이 지어졌다.
문제는 일제가 신작로를 낸다는 명목으로 1907년 흥인지문과 숭례문의 좌우 성첩을 파괴해 흥인지문의 미려한 모습이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흥인지문에서 홍릉까지 조성됐던 국내 최초의 가로수 백양목들도 1933년 도로확장 과정에서 베어졌다. 산업화 과정에서도 흥인지문은 상처를 입었다. 대중교통 수단들이 스칠 듯 가깝게 지나가면서 진동 등으로 보존에 어려움이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프랑스는 문화관광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리지만 문화재 보수·유지에 크게 신경을 쓴다. 고도(古都) 투르에는 지하철이 없다. 지하철 공사 중 매장문화재가 많이 나와 지하철 건설을 포기하는 데 시민들이 동의했다. 남쪽의 님이나 몽펠리에도 마찬가지다.
보물 1호 흥인지문이 시민 곁으로 다가온다. 도로에 둘러싸여 섬처럼 고립돼 있는 흥인지문 주변에 올 10월말까지 녹지 광장을 조성한다고 서울시가 밝혔다.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국보 1호 숭례문 소실에서 보듯 화재 등에 대비한 보존 대책을 철저히 세워야겠다. 그래서 이 땅에 어짐이 흥해 평화가 강물처럼 번져가면 좋겠다. 임진왜란 10여년 전 세도가 김효원의 집이 서울의 동쪽인 건천동(지금의 동대문 근처)에 있어 동인, 정적 심의겸의 집이 서쪽에 있다 하여 서인으로 불리면서 망국의 붕당정치가 시작됐다. ‘둘이 하나 된다’는 뜻의 한자 인(仁)의 정신으로 문화대국의 꿈을 가꿔야 할 때다.
황종택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