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의장성명 삭제 파문은 남북한 외교당국이 각자의 입장을 성명에 반영하려는 ‘외교 경쟁’의 산물인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 정부는 ‘10·4선언’ 관련 문구, 북한 외교당국은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 관련 문구에 대해 싱가포르 측에 항의했고 결국 둘 다 빠지게 된 것이다.
회의 전날이었던 23일 만들어진 의장성명의 실무 초안에는 10·4선언에 대해 각국 외교장관이 ‘환영했다’는 표현이 들어 있었고, 금강산 관련 문구는 없었다.
싱가포르는 이에 대해 “회의에서 복수의 국가가 금강산 관련 언급을 하면 의장성명에 넣겠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회의에선 금강산 관련 언급이 나왔고, 우리 정부 측은 “이걸로 됐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24일 회의 후 받아본 최종안에는 ‘10·4선언에 기반한 남북대화’라는 문구도 함께 들어가 있었다.
이때부터 대표단은 문구 수정을 위해 싱가포르 측과 계속 접촉했으나 자정을 넘겨서까지 싱가포르 측과 연락이 되지 않았다. 금강산 관련 문구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고 나선 북측을 피해 싱가포르 당국자들이 모두 잠적했던 탓이다.
외교부 이용준 차관보는 25일 점심 때 피터 호 싱가포르 차관을 만나 ‘이의제기’를 했다. 이 차관보는 회의석상에서 관련 언급이 없었다는 점과 남북관계에서 이 문제가 굉장히 민감한 부분이라는 점을 설명하며 삭제를 요청했다.
이에 싱가포르 측은 금강산 조항에 대한 북측 입장을 감안할 때 남측의 삭제 주장만 수용할 수는 없고 두 조항을 함께 없애는 것은 가능하다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이 차관보는 27일 “본부와 협의에 따라 이미 각국 대표가 금강산 관련 내용을 발표해 소기의 성과를 거뒀고, 10·4선언 관련 문구는 그대로 뒀을 때 다른 회의에서 원용될 우려가 있어 두 문장을 모두 삭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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