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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선진국 되려면 책 많이 읽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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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사람]18년째 '작은 도서관 만들기 운동' 김수현 목사
◇불의의 사고로 먼저 떠나 보낸 아들에 대한 부채 의식을 안고 살아온 김수현 목사는 “이제는 회한의 상처를 모두 끄집어 내 망각의 강물로 흘러보내고 싶다”고 말한다.
남제현 기자
“독서는 생활에 성찰과 활력을 불어넣어 삶의 질을 높여주지요. 우리 국민이 책을 많이 읽어서 국민의식이 선진화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도록 교회가 일정 부분 그 기능을 떠맡았으면 좋겠어요.” 올해 18년째 ‘작은도서관 만들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서울 청담동 한길교회 김수현(62) 목사를 만났다. 그는 24년 전 사고로 둘째아들을 잃은 일을 계기로 전국 소외지역에 책을 보내는 운동을 하게 됐고, 뒤늦게 목회자의 길에 뛰어들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1984년 12월. 방송기자였던 그가 김포공항에서 외국 VIP를 인터뷰하고 있는데, 그의 손에 쪽지 하나가 전해졌다.

‘영동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 아들 사고’. 정신없이 달려가 보니, 일곱 살짜리 현준이가 엄마가 교회에 가고 없는 사이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가 불이 나자 11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것이다. 현준이는 산소마스크를 쓴 채 괴로워하다가 아빠 앞에서 끝내 숨을 거두었다. 화재 현장에는 아이가 살려고 발버둥쳤던 흔적이 참담하게 남아 있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콱 막히는 것 같아요.”

그는 교회에 가느라 집을 비운 아내를 원망했고, 오랜 기간 별거하다가 이혼에 이르렀다. 두 사람은 이혼절차를 마치던 날 많이 울었다. 운명은 묘했다. 교회와 목사가 죽도록 미웠는데, 우연찮게 이름 모를 교회에서 기독교에 귀의하게 되다니….
◇김수현 목사가 농촌지역 어린이들에게 독서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있다.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방황하던 어느 날 그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건가. 나도 뜻 깊은 일을 해보자’는 생각이 머리에 맴돌고 있던 차에 때마침 목회를 하는 후배에게서 민원 하나를 해결해 달라는 전화가 왔다. 어쩌다 후배를 돕기 위해 찾아간 교회에서 그는 목회자의 또다른 모습을 발견했다.

교회인지 창고인지 모를 낡은 건물에서 후배는 끼니를 라면으로 때우며 지극히 낮은 자세로 교인을 섬기는 것이었다. 이제까지의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조금은 불식시킬 수 있었다.

후배의 아름답고 숭고하기까지 한 성직자의 참모습에 매료돼 남몰래 그 교회를 찾아가 화장실 청소를 하던 중, ‘바로 이 길이 내가 갈 길’이라는 깨침의 소리를 들었다. 짧은 기간에 일어난 일들이지만, 그는 그 일로 교회와 하나님을 향했던 증오와 원망을 걷어내고 야간 신학대학에 다니기 시작했다.

신학대를 나와 목사가 된 그는 1987년 서울 삼성동 언덕배기에 있는 건물 2층을 임차해 첫 예배를 보던 날 가슴이 툭 터지는 뿌듯함을 느꼈다.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가 1990년부터 교회를 ‘책 창고’ 삼아 전국 읍·면 지역에 책 보내기 운동을 전개했다. 95년부터는 방송생활도 접고 목회와 이 운동에 전념했다.

“현준이가 책을 참 좋아했어요. 잠시도 책 곁을 떠나지 않았지요.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책은 얼마든지 사줄 테니까 열심히 읽어라’고 하면 신이 나서 펄펄 날았지요. 내 생애 단 한번의 약속이었는데 지켜줄 수 없게 되자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김 목사가 세상을 향해 책 한 권을 나누는 것은 하늘로 떠나보낸 아들과의 약속을 그렇게라도 지키고 싶어서다. 그동안 일어난 많은 일을 통해 책의 중요성도 절실하게 깨닫게 됐다.

“국민소득이 3만달러가 된다고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돈은 오히려 인간의 심성을 황폐화하기 쉽지요. 선진국이 되려면 국민의식이 선진화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국민이 책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그는 ‘좋은 책 읽기 가족 모임’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 등 도서 모임을 만들어 전북 남원시 원천면 장항리 마을회관을 시작으로 ‘작은 도서관’을 전국에 개설해 나갔다. 그는 중고책이나 소량을 보내는 것이 아니다. 그의 책 운동 슬로건은 ‘스리 모어’(더 좋은, 더 새로운, 더 많은)다. 한 곳에 3000권 가까운 신간을 보내려면 3000만원가량 소요됐지만, 전 재산을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그는 책을 단지 전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단순 재미로 치면 책보다는 게임이나 영화가 훨씬 낫다. 그는 도서관 개관식을 마을축제로 연출해 주민들과 어울려 노래도 부르고, 책과 게임이 어떻게 다른지, 책을 읽으면 인생이 어떻게 바뀌는지,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 내는지 등 일장 연설을 한다.

김 목사는 8월 초 현재 전국 오지마을에 130곳이 넘는 도서관을 개관하는 성과를 거뒀다. 여기에는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도움이 컸다. 네이버는 조건 없이 거금을 후원해 주었고, 이동도서관 버스도 4대나 기증하는 등 천군만마가 돼주고 있다. 그는 일요일 예배 때도 매번 책 한 권을 들고 나와 교훈을 함께 나눈다.

김 목사는 최근 한국 교회와 우리 민족의 미래를 생각하며 자전적 산문집 한 권을 펴냈다. ‘내 생애 단 한 번의 약속’(문이당)에는 도서관 운동, 가족사, 고향, 산촌생활, 교회, 신에 대한 절절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모두 체험을 통해 건져 올린 글들이어서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사상가들의 수상록을 읽거나 선사들의 법문을 듣는 것 같은 감동이 다가온다.

어느새 어린이들 사이에서 ‘책 퍼주는 목사님’ ‘책 버스 할아버지’가 돼 버린 김 목사. ‘자식 하나를 잃었지만, 더 많은 아들을 얻은 아빠를 현준이가 흐뭇해할까.’ 먼 하늘을 응시하는 그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정성수 기자 hul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