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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값도 각자 내는 독일의 사고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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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떨어져 있는 만큼 생각도 다르고 기준도 다르다. 이곳에서는 정상이지만 한국에선 웃음거리가 되는 일이 있고, 한국에선 당연한 행동이지만 이곳에선 손가락질 받을 일들이 있기 때문에 이질감을 느낀다. 한국적 사고로 바라보기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말도 안 되는 사실들이 있다.

바덴바덴은 소련의 고르바초프도 미국의 클린턴도 온천을 즐기러 올 정도로 휴양도시로 유명하고 우리에겐 88올림픽을 결정했던 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지난 겨울 바덴바덴에 사는 지인의 초대를 받고 그곳에서 하루 밤을 머문 적이 있다. 한국에서도 미술전을 열었던 꽤나 잘 알려진 화가의 집이었다.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할 정도로 문화, 아니 사고의 차이를 새롭게 느끼며 지냈던 하루이기도 했다.

 Baden Baden의 사우나 중 한 곳
해질 무렵 이네들이 하는 것처럼 산책하는 것으로 우리를 환영했던 이들을 함께 저녁을 같이 할 부부가 있다고 양해를 구했다. 각자가 음료수를 주문해서 마셨다. 식사가 끝나고 물을 더 마시고 싶은 나는 함께 했던 부부의 물병을 잡는 순간, "그건 우리 것이 아니에요"라는 안주인의 말에 당황했다. 역시 이곳은 한국의 식당이 아니라 독일인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우리네 사고론 당연히 나누어 먹는 물이 아닌가? 우리는 손님이었고 또 함께 했기에 계산도 함께 할 것이라는 생각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물까지도 각자가 지불하는 자리란 것을 잠시 잊었다. 함께 했던 방송국의 프로듀서와 연극배우 부부에게 혹시나 다른 실수는 하지 않았을까? 아직도 적응하지 못한 이국인의 어설픔에 화끈거리는 얼굴을 식혀야만 했다.

 산책하며 발견한 풍경
집 안으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 집 아들은 아이들이 둘 있었는데, 유감스럽게도 이혼 했다고 한다. 아들은 집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살고 아래층엔 아들과 이혼한 며느리와 두 손자들이 함께 사는데 최근에 이사를 갈려고 한단다. 고민이 많다고 한다. 손자들이 집을 떠나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할아버지들처럼 걱정이 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내가 놀랐던 건 그게 아니다. 아들과 이혼한 며느리가 시부모님 댁에서 살아간다는 것조차도 우리 정서론 이해가 되지 않는데, 아들과 이혼 후엔 새로운 남자친구(이곳에서 '남자 친구'란 결혼하지 않은 동거남을 얘기하기도 한다)랑 함께 이 곳에서 산단다. 어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보기엔 더 열 받아야 할 사건을 앞에 두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사 가는 것을 막을 방법을 고민하는 모습이 도리어 내게는 이상하게 느껴질 뿐이다.

밤은 깊어갔다. 독일에선 결혼을 하지 않고 친구로 함께 사는 경우가 많다. 이 말은 시청의 담당공무원 앞에서 결혼서약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한국은 누구나 인감을 찍은 서류만 가져가면 혼인신고가 되지만 이곳은 당사자와 보증인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우리는 시청에서 하는 결혼식이라고 한다. 도장 같은 건 아예 없다. 

 Baden Baden 시내의 모습
통계에 의하면 결혼을 하지 않고 사는 경우의 출산율이 전체의 33% 정도가 된다. 결혼을 해서 자식을 가지고도 이혼을 한다. 그 자식이 결혼할 나이가 되어 상견례를 하게 된다. 한국 같으면 현재 같이 사는 부모만 참석을 하는데, 이곳은 좀 복잡하다. 이혼한 부모 양쪽 모두 새로운 가정을 꾸렸을 경우, 어머니 둘, 아버지 둘, 결국 4명의 부모가 함께 참석한다. 양가의 부모가 어쩜 8명이 함께 상견례 장에 있지 말란 법도 없는 것 같다.

이곳에 태어나서 이들과 함께 살아오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실들이다. 우리같이 한국서 반을 살던 사람은 이런 혼돈 속에서 살다 생을 마감해야 할 과제일 수도 있다. 

게르만 인으로 함께 살아오던 이들이다. 1945년 동서로 헤어졌다가 45여년 만에 통일이 되어 처음엔 얼싸 안았지만, 곧바로, 서로가 무엇인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조상 대대로 다른 말, 다른 환경,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아온 세계가 하나가 된다는 것은 영원히 꿈으로 남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오늘 밤은 떨쳐 버릴 수가 없다. 

700여만 한국인이 세계 속에 살아가는 글로벌 시대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사고와 다른 삶의 방식을 극복해야한다는 것을 안다. 믿을 수 없는 사실들이지만 이들에게는 지극히 정상일 수도 있는 많은 사실들! 이국땅에 살아가는 이방인들은 오늘도 피할 수 없기에 즐겁게 생각하며 싸우고 있을 것이다. 우리처럼.

/민형석 독일통신원 sky8291@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