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는 마음으로 꿈꾸고 꿈꾸는 대로 움직인다. 스페인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1605년 창조해낸 돈키호테는 400여 년간 수많은 이들을 사로잡았다. 스페인 라만차 지방의 알론소 퀴아노는 기사소설에 탐닉하다 스스로 세상의 부정과 싸우겠다며 모험에 나선다. 현실에 발 딛고 환상을 꿈꾸는 돈키호테는 철저한 이상주의자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미치광이라고 여긴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는 원작에서 용기와 이상을 잃지 않는 인물 중심 이야기를 추려냈다. 뮤지컬은 극중극 형태를 띤다. 어두컴컴한 지하감옥에 세르반테스가 시종과 함께 들어온다. 글을 쓰며 세금 징수원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교회에 압류 딱지를 붙였다는 이유로 종교재판에 회부될 예정이다. 죄수들은 즉석 재판을 열고 ‘이상주의자 세르반테스’를 회부한다. 유죄로 결정된다면 그가 쓴 작품 ‘돈키호테’는 불에 태워질 판이다.
세르반테스는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공연을 펼치겠다고 제안한다. 이제 돈키호테의 모험담이 감옥에서 펼쳐진다. 세르반테스는 정신적인 고매함을 좇는 비쩍 마르고 나이 든 기사 돈키호테가 된다. 시종은 뚱뚱하고 현실적인 산초를, 다른 죄수들은 각기 다른 역할을 맡아 한바탕 공연을 펼친다.
돈키호테는 적을 보면 앞뒤 생각하지 않고 일단 돌진한다. 거대한 풍차를 괴수 거인이라고 생각해 달려들고, 놋대야를 둘러쓴 이발사를 황금 투구를 쓴 기사라며 공격한다. 여관의 하녀 알돈자는 자신을 ‘레이디 둘시네아’라고 부르는 돈키호테에게 왜 이런 미친 짓을 하냐고 묻는다. 돈키호테는 답한다. “세상이 미쳐 돌아갈 때 누구를 미치광이라 부를 수 있겠소. 꿈을 포기하고 이성적으로 사는 것이 미친 짓이겠지요.”
‘맨 오브 라만차’는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1965년 초연된 후 5차례 리바이벌되며 인기를 끌었다. 미치 리는 스페인 민속음악을 활용해 이국적인 분위기를 이끌어냈다. 경쾌한 ‘라만차의 사나이’와 ‘둘시네아’, 알돈자가 부르는 ‘내게 뭘 원하나’ 등 모든 뮤지컬 넘버가 뛰어나다.
한국 공연은 2005년 정식 초연된 후 올해까지 세 번째다. 지하감옥을 형상화한 무대는 정교하다. 돈키호테 역에는 2005년 출연한 류정한과 2007년 출연한 정성화가 더블 캐스팅됐다. 12일 개막 무대에 선 정성화는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를 오가는 자연스런 연기, 안정적인 노래로 역량을 맘껏 과시했다. 윤공주는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로 급격한 내면 변화를 겪는 알돈자를 잘 소화해냈다.
좌충우돌하던 돈키호테는 거울의 기사를 만나며 쓰러진다. 거울 속에 용맹한 기사가 아니라 노쇠한 늙은이가 있음을 확인한 돈키호테. 불타는 열정, 환상과 함께 삶의 의욕도 사라져 버린다. 병석에서 알돈자를 알아보지 못하던 돈키호테는 생의 마지막 순간 기억을 되찾는다.
장면은 다시 감옥으로 돌아온다. 이상을 바라보며 열정으로 행동하는 돈키호테는 세르반테스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상주의자 세르반테스, 유죄인가 무죄인가. 관객의 답은 정해졌다. 9월23일까지 LG아트센터. 1588-5212
이보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