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신문을 읽다가 정말 깜짝 놀랐다. 슬로베니아 출신 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가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 가진 인터뷰 기사 때문이다. 신문이 때로는 이렇게 변신할 수가 있구나 하며 혼자서 감탄하였다. 금세기 최고의 철학자라는 통속적이며 비철학적인 언어로 상찬되는 그는 한국에서도 30여권의 저서가 번역되는 등 ‘지제크 신드롬’을 낳았다.
그의 책은 읽기가 쉽지 않다. 지적 사치를 위해 ‘무너지기 쉬운 절대성’(김재영역·인간사랑)이라는 그의 역서를 읽으면서 청양고추를 먹은 것처럼 머릿속이 알알했던 기억이 새롭다.
일상에 대한 물음에 그의 답변은 요설과 독설, 냉소와 야유 그리고 풍자가 넘쳐났다. ‘일생에서 최악의 일은?’ 답이 가관이다. “가르치는 일. 나는 학생을 싫어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어리석고 따분하다.” 어찌 그만 그러리. 아성(亞聖) 맹자가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 가운데 하나로 가르침을 들었지만, 그 역시 영재(英才)에 국한하지 않았던가. 영재는 만에 하나도 없을 텐데 영재교육원이 가득 차는 게 현실이다. 둔재는 둔재고 영재는 영재인 줄 번연히 알 텐데 둔재를 영재로 만들겠다며 사교육에 매달리는 그 눈멂에 질린다.
아무튼 독설은 그 울림이 은은하면서도 멀리까지 퍼진다. 개그나 코미디가 재미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 속에 담긴 역설의 미학이 청자의 마음을 흔들어 웃음을 초대하는 데서 연유한다. 비어스가 만든 ‘악마의 사전’을 들춰 보면 더욱 그러한 생각이 강해진다.
문득 놀면서 세비만 축내는 국회의 뜻풀이가 궁금해졌다. ‘법률을 무효로 하기 위해 회합하는 사람의 집단’으로 돼 있다. 100여년 전에 오늘의 한국 국회를 보고 사전을 만든 것 같다. 아니 우리 국회는 한술 더 떠 숫제 법률을 행동으로 무효로 하는 시범을 보이고 있다. 내친김에 ‘정치’를 찾아보았다. ‘범죄 계급 중에서 보다 저급한 족속들이 즐기는 생계수단’. 그렇다. 국회가 문닫아 놓고 백수건달처럼 지내는 것은 범죄라는 것을 우리 국회는 알까 모를까. 이왕 독설을 주제로 했으니 앙리 드 몬테를랑의 정의를 첨부한다. ‘정치는 인류의 암이다.’ 우리 국회와 정치는 언제쯤 철이 들까.
조병철 수석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