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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경제가 안 풀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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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수 논설위원
얼마 전 스페인이 50여년간 유지해온 부유세를 폐지했다. 지난 3월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사파테로 총리가 선거 공약을 이행코자 오스트리아 덴마크 독일 네덜란드 핀란드에 이어 폐지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만약 한국에 부유세가 있다면 이명박 정부는 어떻게 했을까. 아마도 공약으로 폐지를 내걸고 집권했을지라도 실행하지는 못했을 듯싶다. 사회적 논란과 저항이 엄청나게 큰 것을 보고 놀라서 엉거주춤 뒤로 물러서는 모습만 연상된다.

우리나라엔 부유세가 없지만 비슷한 성격인 종합부동산세는 있다. 종부세는 전체 가구수의 2%에 해당하는 6억원 이상 주택 소유자가 내고 있고 스페인 부유세는 총 인구의 2.5% 정도가 대상이었으니 비슷한 수준이다. 총 재산을 잣대로 한 부유세와 달리 종부세는 부동산만을 기준으로 했지만 성격상으로는 ‘변형 부유세’라 할 수 있다.

좌파 사회당 정부인 스페인도 부유세를 없앴는데 우리는 말 많고 탈 많은 종부세를 8·21 부동산대책에서도 언급조차 못하고 추후 과제로 넘겼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배가 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 한국사회의 정서와 무관하지 않겠지만, 무엇보다 소신과 철학보다는 눈치보기에 치중하는 현 정부 행태 때문이다. 스페인 정부는 총선 공약으로 국민의 검증을 받았다고 판단해 시행에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종부세 같은 징벌성 세금을 정리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어 집권에 성공하고도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촛불 시위에 충격을 받은 이후 이런저런 눈치만 보며 몸을 사리는 데 급급할 뿐이다.

경제의 요체는 자본(돈)이 물 흐르듯 흐르게 하는 것이다. 부유층이 지갑을 열게 해 그 돈이 서민·저소득층으로 가게 해야 한다. 서울 강남 등의 부유층을 타깃으로 ‘세금 폭탄’을 퍼붓는 것보다는 지갑을 열게 하는 게 더 효과적인 방안이다. 스페인의 부유세 폐지도 경제를 살리기 위해 부유층의 돈줄을 터주자는 전략이다. 저들은 일부 반발이 있어도 신념을 갖고 실천에 나서지 않았는가.

수도권 규제도 마찬가지 사례다. 수도권과 지방 간 첨예하게 맞서는 사안이라 조심스럽지만, 수도권 집중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지방의 견해나 수도권 규제는 전국을 하향평준화하자는 것이라는 주장은 모두 그 나름의 논리를 갖고 있다. 현 정부는 분명 수도권 규제 완화를 공약으로 내건 바 있지만 양쪽 눈치만 보다 결국 보신에 유리한 지방 쪽에 줄을 섰다. 지난달에 ‘선 지방 발전, 후 수도권 규제완화’를 천명했다. 심사숙고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왜 주요 공약을 헌신짝처럼 버려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이 그저 편한 길을 선택한 셈이다. 종부세 문제에서 2%보다 98%의 눈치를 보고 있듯이.

사실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반대한 쪽은 말할 것도 없고 지지자들도 대부분 ‘7·4·7 공약’의 실현 가능성을 믿지 않았다. 다만 노무현 정부와는 다른 정책을 택해 경제 살리기에 힘써줄 것으로 기대했다. 분배와 형평도 중요하지만 성장 없인 불가능하니 일단 파이를 키우는 쪽으로 갈 것으로 내다봤다. 감세정책과 과감한 규제 완화, 공기업 개혁을 통해 ‘작은 정부, 큰 시장’을 구현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집권 6개월간 행보는 실망 그 자체다. 종부세나 수도권 규제에서 보듯 전임 정부 정책과 차별성이 전혀 없어 ‘큰 정부, 작은 시장’ 기조가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현 정부에 주어진 시간 중 10분의 1이 흘렀다. 현재까진 실패한 정부로 평가된다. 이승엽은 베이징 올림픽에서 7게임에서 죽을 쑤다 마지막 2경기에서 제 몫을 다해 국민을 열광시켰다. 이승엽처럼 극적 반전을 이루자면 의욕과 투지를 갖고 집중해야 할 것 아닌가. 더 이상 좌고우면하거나 갈팡질팡하지 말고 대선에 표출된 민심을 믿고 소신껏 정책을 펴라. 내우외환의 총체적 위기에 처한 경제를 살리려면 ‘작은 정부, 큰 시장’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닌가.

이익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