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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전자발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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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할리우드작 ‘데이비드 게일’의 주인공은 젊은 철학교수다. 지적이고 저명하고 패기가 넘친다. 아름다운 부인도 있다. 그 주인공(케빈 스페이시)이 밑바닥으로 전락하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다. 여제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되자 인생이 급전직하하는 것이다. 결국 무혐의 처분을 받지만 세상은 주인공을 매섭게 노려본다.

성폭행 범죄에 대한 사회통념을 반영하는 영화로는 1996년작 ‘타임 투 킬’도 빼놓을 수 없다. 성폭행당한 딸의 아버지로 분한 흑인 배우 사무엘 잭슨은 범행을 저지른 백인 건달들에게 총을 난사한다. 법원 앞에서다. ‘백인쓰레기’(Whitetrash)를 청소한 건맨인 동시에 흑인 살인범인 잭슨을 과연 백인사회가 어떻게 사법처리하느냐가 관건이다. 케빈 스페이시는 이 영화에도 나온다. 여기서는 유죄 평결에 목을 거는 검사 역할이다.

성폭행만큼 공분을 자극하는 범죄가 또 있을까. 아동이 피해자인 때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정교한 논리로 무장한 사형폐지론 등도 꼬리를 내릴 정도다. 오죽하면 소고기 시위가 한창이던 얼마 전에 한 극우 논객이 “촛불집회에 아이들을 데려오는 건 성폭행범보다 더 나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큰 논란을 빚었을까.

성폭행은 범죄학 분야에서도 큰 관심사다. 죄질도 나쁘지만 재범률도 월등히 높아서다. 1990년대 행해진 미국 학술연구 결과에 따르면 10년간의 추적조사에선 26%의 재범률이, 25년간의 조사에선 39%의 재범률이 확인됐다. 국내 연구결과도 비슷하다. 2006년 피의자 인권을 중시하는 내용의 신문 기고를 했다가 파문을 빚어 지난해 전직한 금태섭 변호사는 이렇게 단언했다. “검사 생활을 하다보면 진짜 변하기 어려운 사람이 둘 있는데 하나는 아내를 패는 남자고 또 하나는 아동 성폭행범이다.”

법무부 측이 그제 “9월 말이면 첫 착용자가 나올 것”이라고 예고했다. 다음달 1일부터 시행되는 ‘특정성폭력범죄자 위치추적 전자장치부착법’(전자발찌법)에 따라 전자발찌를 차는 사람이 앞으로 속출할 것이라고 한 것이다. 대상자는 2회 이상 성폭력 범죄를 저지르거나 13세 미만의 아동 성폭력을 범한 사람들이다. 사회적 논란 끝에 어렵게 도입된 전자발찌 제도와 더불어 반인륜적인 성폭력 범죄가 뿌리 뽑히기를 고대한다.

이승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