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문화산책]사라지는 동네 가게들

입력 :
폰트 크게 폰트 작게
하성란 소설가
불경기 탓일까 뒷골목 후미진 곳에 들어서면 빈 상점들이 곧잘 눈에 띈다. 단골 미용실 창가에 앉아 있다가 맞은편 건물의 창문으로 불쑥 다가온 한 아가씨와 눈이 마주쳤다. 진한 분홍으로 염색하고 과장되게 부풀린 머리가 익살스러워 보인다. 새로운 트렌드인가, 슬쩍 살펴보려는데 아가씨가 덜렁 가발을 벗는다. 그곳은 즉석 사진방이었다.

그곳에는 원래 붙임머리를 염가에 해주던 미용실이 있었다. 미용실 두 개가 이층에 나란히 마주하고 있어 자연스럽게 상대편 미용실 안이 들여다보였다. 요란한 파마 기구를 잔뜩 머리에 붙이고서 그곳의 누군가와 시선이 마주칠라치면 못 본 척 고개를 돌리곤 했지만 다른 미용실의 트렌드를 읽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창에 빼곡히 붙은 파마의 종류와 가격표를 채 떼어내지도 않은 채 즉석 사진방이 들어선 모양이었다. 손님은 많지 않다. 스티커 사진을 찍으러 골목 안으로 들어와 다시 이층까지 찾아 올 손님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걸 아는지 새 주인도 새로운 인테리어는 하지 않았다.

한눈에도 낡고 오래된 상가 곳곳이 텅 비어 있다. 유난스레 무뚝뚝한 아주머니의 십자수 가게가 문을 닫았을 때는 그 아주머니의 장사 수완 탓으로 돌렸는데 그것이 시작이었나 보다. 옆의 속옷 가게는 일 년 더 버텼다. 간판은 그대로 남았는데 땡처리 물건을 파는 상인들만 연방 들어왔다 나간다고 한다.

아파트 상가에 있던 ‘미니 슈퍼’도 문을 닫았다. 과일 상자들을 보도 밖에 내놓아 몇 번 발이 걸려 넘어질 뻔했을 때는 투덜대기도 했지만 “하나는 덤이요”라며 사과나 복숭아를 더 넣어줄 땐 고맙기까지 했다. 급작스레 떨어진 양념이나 두부 한 모를 사러갈 때면 앞치마를 두른 채로 달려갈 수 있는 가깝고 편한 곳이었다. 두부 한 모 달랑거리며 돌아올 때면 어릴 적 심부름 다녀오던 추억이 떠오르곤 했다.

가게가 문을 닫기 얼마 전부터 슈퍼 아저씨와 아줌마는 가게 앞에 나와 배드민턴을 쳤다. 그 공 하나 제대로 못 받아치느냐고 아줌마를 놀려대던 슈퍼 아저씨의 웃음소리 때문인지 어느 날 빈 봉지가 굴러다니는 텅 빈 가게 앞에 섰을 때는 어안이 벙벙했다. 물건 다 빠진 슈퍼는 생각보다 더 협소했다. 그런데 그 작은 공간 속에 없는 것이 없었다.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을 텐데도 생크림도 있고 아침 프라이용 달걀도 있었다.

슈퍼가 문을 닫기 전에는 동네 문방구가 폐업 정리를 했다. 비좁은 문방구 안에서 조무래기들을 상대하며 삼십대에서 사십대 초반이 되었을 문방구 아저씨는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할까. 빈 문방구 앞을 지나칠 때면 쓸쓸해지곤 했는데 며칠 만에 뚝딱 옷가게가 들어섰다.

오래전 쌀집 아저씨도 사라졌다. 쌀집 아저씨로 불리던 예능 프로의 프로듀서 때문에 푸근하고 친근하게 생긴 남자들이 쌀집 아저씨로 불리던 때도 있었다. 등받이 긴 자전거에 쌀 포대를 얹고 골목을 달리던 쌀집 아저씨의 모습도 못 본 지 오래다. 언제부턴가 서점 아줌마도 볼 수 없다. 카디건을 어깨에 걸친 채 늘 책을 읽던 모습이 아름다워 나중에 크면 서점 아줌마가 돼야겠다는 꿈을 가진 적도 있었다.

왜 작은 가게들이 버텨내지 못하는 걸까, 십 년, 이십 년 동네의 터줏대감처럼 자리 잡아 대를 이어가는 가게란 없는 것일까. 그 사이 정문 밖의 도로 모퉁이에는 대기업의 슈퍼마켓이 들어섰다. 시내 한복판이 아닌 동네 골목에서 대기업의 이름을 보자니 얼떨떨하다. 정말 발 빠르다는 생각과 함께 하나, 둘 사라진 그들이 떠오른다. 이름 대신 ‘○○아저씨, ○○○아줌마’로 친근히 불리던 그들.

손님이 찾지 않는 가게 앞에서 배드민턴으로 시름을 잊었을 슈퍼 부부의 마음에 인제서야 마음 한 자락이 가 닿는다. 아저씨가 왜 그렇게 크게 웃었는지 알 것 같다.

하성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