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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알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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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스포츠 종목 중에 유일하게 심판이 없는 운동이 골프다. 18홀을 라운딩하는 동안 모든 걸 골퍼의 양심과 매너에 맡길 수밖에 없다. 매너 스포츠인 만큼 양심을 속이는 행위는 용납되지 않는다. 골프가 신사의 스포츠라고 불리는 이유다.

라운딩을 해보면 그 사람의 인격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필드에서 온갖 상황이 벌어지다 보니 평소 보이지 않던 성품이 노출되기 마련이다. 아마추어 골퍼들은 간혹 공이 디보트(클럽이 잔디를 긁어 움푹 파인 자리)에 놓여 있을 경우 옮겨 치고 싶은 유혹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볼을 건드리는 행위는 룰 위반이지만 주말 골퍼들 사이엔 애교로 봐 줄 만하다.

축구나 야구에서 선수가 볼을 가랑이 사이로 빠뜨릴 때 ‘알까기’라는 말을 쓴다. 골프에도 ‘알까기’가 있다. 골프장에 웬 닭이냐고? 사람이 일순간 닭이 되는 경우가 종종 벌어진다. 타구가 경계선 밖으로 나가거나 찾지 못할 경우 벌타를 피하려고 주머니에서 남몰래 볼을 꺼내 놓고 치는 행위를 일컫는다. 남의 눈을 속이고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악질적인 반칙이다. ‘핸드 웨지(클럽이 아니라 손으로 던져 넣는 행위)’를 쓰고픈 달콤한 악마의 유혹은 내기의 규모가 클수록 강하다. 눈앞의 돈에 대한 유혹 때문일 게다. 극히 드물지만 아예 바지 주머니에다 알구멍을 뚫어 놓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프로대회나 전국체전에서도 알까기를 하다 적발된 사례가 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에서 활약 중인 P프로는 ‘알까기’라는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대회 중에는 아예 달걀을 먹지 않는 습관을 갖고 있다. 고의적인 오구(誤球)플레이인 ‘알까기’를 할 경우 프로선수는 대회에서 실격됨은 물론 선수 자격마저 정지당하는 중형을 받게 된다.

얼마 전 대전시장배 아마추어골프대회에서 ‘알까기’ 때문에 골프채로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A씨는 티샷이 OB(out of bound)가 났는데도 태연자약하게 ‘알까기’를 하다 같은 조의 B씨에게 걸렸다. B씨가 ‘그러시면 안 된다’고 지적하자 A씨는 갖고 있던 골프채로 B씨의 옆구리 등을 폭행해 구속된 것이다. 바야흐로 라운딩하기 좋은 계절이다. 필드에 나서려고 샷을 연습하기에 앞서 매너와 양심을 가다듬어야 하지 않을까.

박병헌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