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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우리 땅" 외침보다 중요한 건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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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제국주의 논리 실효적 지배 사실들로 반박
역사적 근원 찾아 우리의 영토임을 주장해야"
독도 견문록/주강현 지음/웅진 지식하우스/2만5000원

“독도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주강현 지음/웅진 지식하우스/2만5000원

올 여름 우리 국민은 누구나 휴가를 보내면서도, 베이징올림픽 경기에 열광하면서도 마음 한 켠으로는 이 같은 생각을 해봤을 듯하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매년 되풀이돼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올해는 심각성이 더했기 때문이다. 중학교 교과서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을 명기한 데다 미국 국립지리원 지명위원회에서 독도(리앙쿠르)를 한국령에서 주권 미지정 지역으로 변경했다가 금세 시정한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그야말로 독도 문제는 정부와 국민 모두에게 ‘발등의 불’이 된 것이다.

해양문명사가인 주강현 박사의 ‘독도 견문록‘은 이 같은 민감한 시기에 독도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독도 교양서’라 할 만하다. 저자는 독도 문제를 국지적인 한일관계사의 맥락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지극히 제한적인 외눈박이 시각이라고 주장한다. 독도 문제는 해양제국의 논리가 적나라하게 적용된 첨예한 범지구적 해양사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대항해시대 이후 세계 곳곳에서 ‘제국에 의한 지명 붙이기’는 수없이 이루어졌다. 독도가 세계에 ‘리앙쿠르’로 알려진 까닭도 1849년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호가 독도를 ‘발견’해 멋대로 이름 붙였기 때문이다. 한라산이 오클랜드 산으로, 거문도가 해밀턴 항으로 탈바꿈한 이유 역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자기들 멋대로 ‘발견’한 섬에 명칭을 붙이는 수법은 제국주의의 오랜 전통이었다. 원주민이 쓰는 지명을 무시하고 서구제국이 ‘발견’한 명칭을 쓴다는 것은 그 섬이 애초부터 무인도였으므로 누군가의 손으로 넘어가야 할 영토 획득의 대상물로 전락시킴을 뜻한다.

러일전쟁 와중에 시마네현 고시를 통해 비법적으로 독도를 편입시킨 일본의 행위는 이러한 제국의 약탈 수법을 그대로 한반도에 적용한 결과에 다름 아니다. 기존의 역사적 연고권을 완전히 무시하고 ‘무인도 리앙쿠르 선점’이라는 제국의 방식을 그대로 강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 같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논리에 맞서기 위한 대응책으로 바로 역사적 근원을 증명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예부터 독도를 우리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 독도를 일상적인 생활권으로 이용해왔다는 점을 밝히는 것이 독도의 실효적 지배를 주장하는 데 힘이 실린다는 것이다.

‘독도는 우리 땅’임을 주장할 수 있는 가장 큰 근거는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 즉 누가 독도를 일상적 생활 터전으로 삼았는가라 할 수 있다. 독도는 울릉도에서 목측(目測) 가능한 섬이다. 도구를 이용하지 않고 육안으로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반면 일본에서는 어디서도 독도를 볼 수 없다. 가장 가깝다는 시마네현 오키제도와 독도의 거리는 159㎞인 반면, 울릉도에서 독도까지는 88㎞에 불과하다. 가시거리에서 조업하는 울릉도민이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오키 어민보다 역사적, 현실적 지배력을 지니고 있음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이와 함께 조선 중기 어민 안용복이 일본의 울릉도 침탈을 저지시키려 독도까지 따라가고, 일본까지 가서 무단 출어에 대해 항의한 사건은 울릉도 어민들이 독도 근해에 진출해 어로활동을 하였음을 입증하고 있다.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에서도 이미 독도가 육안으로 관측 가능했음을 밝히고 있는 만큼 독도를 실질적으로 지배했다는 사실이 분명히 성립한다는 것이다.

박태해 기자 pth122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