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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오석 고려대 겸임교수·전 국제무역연구원장 |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키워드로 역동성을 꼽는다. 신명이 나면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한국인의 응집력과 폭발력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불과 반세기 만에 고도성장을 이룬 밑바탕에는 바로 이러한 우리 민족의 역동성이 자리 잡고 있다. 사실 세계 어느 민족과 비교하더라도 한국인만큼 활동성이 높고 성격이 급하며 다혈질인 민족도 드물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보여 준 세계 7위의 성적과 국민적 성원, 2002년 월드컵 당시 세계를 놀라게 한 ‘붉은 악마’의 열정적인 응원과 냄비처럼 달아올랐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평온해지는 여론, 사생결단을 낼 것처럼 격렬한 노사분규 등이 단적인 예다.
한국인 한 사람 한 사람은 그야말로 넘치는 에너지 덩어리다. 이것이 때로 규칙을 무시하고 조직문화를 저해하는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엄청난 자원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마치 핵 에너지를 한꺼번에 분출시키면 원자폭탄이 되어 재앙이 되지만 적절히 조절하여 반응속도를 늦추면 전기를 만드는 핵 발전소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1990년대 중반부터 이렇게 역동적인 우리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지고 자신감을 상실하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는 과거부터 누적된 여러 가지 구조적인 문제가 작용하였지만, 그 배경에는 뿌리 깊은 반기업 정서와 정치 우위의 경제 운영도 이러한 현상의 악화에 기여하였다.
속담에 빗대어 ‘시장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들을 한다. 시장경제란 잘하고 못하는 경제주체를 차별해 못하는 자를 탈락시키고 잘하는 자는 더 격려하고 지원해 주는 장치라는 뜻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만들어내는 기업에 더 많은 이윤이 돌아가고,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에게 더 높은 임금으로 보상하는 곳이 바로 시장이다. 정부의 역할은 바로 이러한 시장에서 뛰는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여건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중소기업정책도 이제는 대기업의 확장을 막아 중소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정책의지에서 과감히 탈피해 글로벌 경제 하에서 세계시장을 공략할 선도 기업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잘사는 나라일수록 경제가 정치에 우선한다. 인간의 본성과 경제 운영의 원리를 무시한 채 구호와 정치권력에 의존해서는 경제 문제를 풀 수 없다. 정치의 세계에서는 다수결의 원리가 통하지만 경제 분야에서는 경제법칙을 무시하고 다수결로 밀어붙일 수 없는 노릇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경제는 저절로 잘 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기업과 부자를 돈에 눈이 먼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하며 지탄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그러면서도 돈이 필요할 때마다 정치권에서, 학계에서, 문화계에서, 시민단체에서 이러저러한 명분을 달아 기업에 손을 벌리는 관행은 여전하다.
과거 농업국가일 때는 국가의 생산주체인 농민을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산업국가로 바뀌어 생산주체가 기업이 되었는데도 ‘기업천하지대본(企業天下之大本)’은 되지 않고 있다.
세계화의 거대한 흐름 속에 단 하나의 글로벌 시장만이 존재하는 오늘날 세계경제에서 한 나라가 소망하는 정도의 경제성장을 이루려면 글로벌 시장에 참여하고 지국에 투자할 만한 다국적기업을 찾아 그 나라에서 생산해낸 상품을 글로벌 시장에 내다 팔지 않고는 달리 방법이 없게 되었다. 이는 곧 글로벌 자유시장 경제의 운영 규칙을 인식하고 이를 준수할 정치와 경제 시스템을 갖추어야 함을 의미한다.
현오석 고려대 겸임교수·전 국제무역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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