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용서와 화합의 메시지를 남기고 영면했다. 노 전 대통령의 국민장이 29일 국민들의 눈물과 애도 속에 엄수됐다. 국민장은 이날 오전 5시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발인을 시작으로 서울 영결식과 노제, 경기도 수원에서의 화장을 거쳐 밤늦게 다시 봉하마을 정토원에 안치하는 것으로 진행됐다. 왕복 780㎞에 걸쳐 장장 16시간 이상 걸렸다. 그동안 500만명 이상의 국민이 전국의 분향소를 찾아 추모했고, 영결식이 열린 이날도 수십만명이 그의 떠나는 길을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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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극기 휘감은 채 군 의장병들이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해가 서울 경복궁 영결식장으로 떠나기에 앞서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치러진 발인제가 끝난 뒤 노 전 대통령의 관에 태극기를 덮고 있다. 김해=송원영 기자 |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인이 이뤄진 29일 새벽 경남 김해 봉하마을은 통곡 속에 조문 인파와 노란 종이비행기 물결이 거대한 강을 이뤘다. 조문객은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눈물로 지켜봤다.
오전 5시 발인을 앞두고 분향소로 가는 조문객으로 봉하마을 진입로는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조문객 2만여명은 전날부터 밤새 분향소를 지켰다. 새벽 한기가 몸을 떨게 했지만 조문객은 신문지와 비옷 등을 몸에 두르고 노숙을 하면서도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밤새 촛불을 켜들고 흘린 눈물로 눈주위가 퉁퉁 부었지만 발인이 이뤄지는 내내 눈물샘은 마르지 않았다.
짙은 어둠이 물러가며 어슴푸레한 여명이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한 부엉이바위를 품고 있는 봉화산에서 터오는 가운데 발인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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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정 따르는 유족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와 아들 건호씨 등 유족들이 29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발인 뒤 영정사진을 따라 사저로 향하고 있다. 김해=송원영 기자 |
상주인 아들 건호씨가 술과 음식을 올리는 의식인 견전제(遣奠祭)를 마친 뒤 절을 했고, 이어 유가족이 무릎을 꿇고 앉은 가운데 축문이 낭독됐다.
유족이 절을 올리는 재배를 끝마치고 권양숙 여사와 건호·정연씨 남매 등 유족이 영정을 앞세워 마지막으로 사저를 들르러 발걸음을 옮겼다.
수척한 권 여사를 본 조문객들은 눈물을 훔치면서 “힘내세요”라고 위로했다. 딸 정연씨와 손녀 손을 꼭 잡은 권 여사는 골목길에 모여 오열하는 조문객을 향해 일일이 고개 숙여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사저에 도착한 일행은 고인이 일주일 전까지만 하더라도 머물며 체취가 밴 서재와 침실, 거실 등을 둘러봤다.
유족이 사저에 간 사이 관을 실은 운구차가 천천히 마을회관 입구로 이동했다. 노 전 대통령 혼백이 화신한 것인지 새하얀 비둘기가 운구차 바로 위 전깃줄에 잠시 앉았다가 훌쩍 날아갔다.
운구행렬이 움직이기를 기다리며 조문객들은 ‘늙은 군인의 노래’, ‘임을 향한 행진곡’ 등을 합창하며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렸다.
경찰 오토바이 길 안내로 선도차와 영정차를 앞세운 채 운구차가 이동하기 시작하자 조문객으로 발디딜 틈 없는 길 양 옆이 통곡의 바다로 변했다.
이들은 밤새 준비한 노란색 종이비행기를 영구차를 향해 날리며 노 전 대통령에게 이별을 고했다. 곳곳에서 “잘 가세요”, “고생 많으셨습니다”라는 외침이 들렸다. 한 여성은 출발하려는 운구차 앞에 엎드려 절을 올렸다.
조문객은 40분 만에 발인을 아쉬워하며 운구행렬을 따라 마을 입구까지 거대한 물결을 이루며 따랐다. 오전 6시쯤 봉하마을을 출발한 운구차량은 중부내륙·경부고속도로를 거쳐 375㎞를 달려 오전 11시 서울 경복궁 영결식장에 도착했다.
김해=장원주 기자 strum@segye.com



